금속노조 부산양산지부 풍산마이크로텍지회(지회장 문영섭, 아래 지회)는 2016년 부산시청 앞에서 집회하다 황당한 일을 겪었다. 당시 지회 조합원들은 수년에 걸친 투쟁 끝에 정리해고가 부당하다는 대법원 확정판결에 따라 복직했지만, 회사는 곧바로 대규모 희망퇴직을 강행했다.

부산시가 이 희망퇴직에 직접 개입했다는 정황이 드러났다. 부산시와 풍산그룹이 합작해 사업장 부지를 센텀시티 2로 개발하고 있었는데, 이해당사자인 부산시가 개발에 걸림돌이 되는 풍산마이크로텍 노동자들을 정리하는 데 직접 개입한 것이다.

지회 조합원들은 부산시의 부당한 구조조정 개입을 규탄하고자 부산시청 앞에서 집회를 열었다. 조합원들은 부산시의 구조조정 개입 의혹을 규탄하는 전지 크기 선전판 여덟 개를 집회신고 장소인 인도 한편에 설치하려 했다. 선전판을 설치하자마자 느닷없이 구청 공무원들이 강제로 선전판을 빼앗아 갔다. 내용은 물론 설치 장소나 방법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음에도 그랬다.

구청의 부당한 선전판 강제철거에 화가 난 문영섭 지회장 등은 선전판을 철거하던 공무원의 멱살을 잡고 흔들고 손으로 밀쳐 넘어뜨린 뒤 선전판을 회수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경찰들이 문영섭 지회장을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현행범 체포했다. 그날 문영섭 지회장은 유치장 신세를 졌다.

▲ 2016년 2월3일 부산시청 앞 노숙투쟁 중인 풍산마이크로텍지회 조합원이 취침 채비를 마치고 자리에 눕고 있다. <아이레이버> 자료사진

이날 경찰서로 연행된 문영섭 지회장을 접견한 나는 자초지종을 듣고 위법한 체포임을 확신했다. 도로법에 따라 적치물을 강제로 철거하려면 해당 적치물이 위법해야 한다. 선전판은 신고한 집회 물품으로 집회에 필요했다. 시민들에게 직접적이고 명백한 위험을 줄 만한 물품이 아니었다. 이런 물품을 강제로 철거하는 일은 법리상 위법한 공무집행임이 분명했다.

위법한 공무집행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해당 경찰을 주먹으로 때리면 공무집행방해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판례도 여러 개 있다. 공무집행방해죄는 ‘적법한 공무집행’을 폭행 등으로 방해해야 성립하는 죄다. 공무집행이 위법했다면 저항하는 과정에서 폭행이 있더라도 공무집행방해죄는 성립하지 않는다. 이 경우 죄가 없는 문영섭 지회장을 체포해 유치장에 가뒀기 때문에 체포는 당연히 위법이다.

나는 부끄러워서라도 검사가 이 건으로 기소하지 않을 줄 알았다. 몇 달 후 검찰은 문영섭 지회장을 기어이 기소했다. 혐의는 공무집행방해죄와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중 공동상해였다.

다행히 법원은 공무집행의 위법성을 인정하며 공무집행방해죄에 무죄를 선고했다. 검사가 굳이 별도로 기소한 ‘상해죄’에 대해서도 위법한 공무집행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공무원에게 상해를 입힌 점을 인정해 ‘정당방위’에 해당한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검사가 이 판결에 불복해 현재 항소심 중이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검․경 의 오기, 백남기 농민 사건이 떠오른다

법원이 정당방위를 인정하며 전부 무죄를 선고해서 다행이다. 나는 이 사건에서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경찰과 검찰의 위험한 오기(傲氣)를 느낀다.

공무집행을 방해하기 위한 ‘폭행’은 공무집행방해죄에 포함되므로 따로 폭행죄로 기소하지 않는다. 이 사건에서 검사는 굳이 공무원들이 ‘상해’를 입었다며 상해죄도 기소했다. 검사 자신이 보기에 공무집행방해죄가 성립하기 어려울 것 같으니 전부 무죄가 되는 상황을 막으려는 의도로 굳이 기소한 듯하다.

상해를 입었다는 공무원이 경찰 권유로 병원 진단을 받은 경위나, 항소심에서 별 중요하지도 않은 듯한 증인을 꼭 부르겠다며 결사 항전을 다짐하는 검사의 태도를 보면 더욱 그러하다.

이 사건에서 경찰과 검찰이 보이는 태도는 백남기 농민 사건에서 보여줬던 태도와 상당히 겹친다. 백남기 농민은 수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경찰 물대포를 직격으로 맞고 쓰러져 결국 사망에 이르렀다. 물대포를 직접 발사한 경찰관과 지휘관이 상해치사죄를 저지른 사실이 명백해 보인다.

우리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전개를 봤다. 사망진단서의 병사 기재, 빨간 우의 논란, 시체 검증 영장 신청까지. 어느 것 하나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막장의 향연이었다. 백남기 농민 사건이 막장으로 흐른 배경에 경찰과 국가의 위험한 오기가 자리 잡고 있다. 공권력의 잘못으로 국민이 죽음에 이른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오기다.

정상 신고 집회 선전물을 강제로 빼앗아 집회를 방해하는 범죄를 저지른 공권력이 이에 저항한 노동자를 체포해 유치장에 가두고 잘못을 인정하기는커녕 기어이 별도로 상해죄를 얹어 기소한 이 사건과 본질이 다르지 않다.

 

“이게 나라냐”

국가 공권력은 위험한 폭력으로 변질할 수 있으므로 반드시 적법절차에 따라 필요 최소한으로 행사해야 한다. 공권력을 잘못 행사해 국민을 해치고, 반성하고 사과하기는커녕 끝까지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급기야 잘못을 덮기 위해 적극 막장 행위마저 일삼는다면, 그런 국가는 짐승만도 못해서 나라라고 부를 수 없다. 지난겨울 전국 곳곳의 광장에서 이 구호가 가장 많은 공감을 얻었던 이유다. “이게 나라냐.”

김두현 금속법률원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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