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개월이 지나고 있다. 흑자회사였던 공장을 하루아침에 청산하고 모든 직원을 1주일 만에 내쫓은 발레오자본. 이것을 거부한 노동자를 법정 유효기간인 3개월 뒤 전원 해고한 발레오자본. 남아있는 이들에게는 업무방해로 고소고발과 손해배상 등의 압박을 가하고 있다. 남은 노동자들에게 가정통신문을 보내 “더 이상의 위로금은 없다”며 공장퇴거
“추간판탈출증 산재 인정됩니까?”, “하지정맥류는요?”, “요새 금속노조에서 백혈병, 폐암에 대해 산재신청 한다던데 저희도 가능할까요?”, “산재 불승인이 나왔는데 어떻게 구제를 받을 수 있습니까?” 금속노조 노동안전보건실에서 일을 하면 산재 노동자의 전화를 수시로 받게
나는 경주 발레오만도 해고노동자다. 버림받고 내팽겨지고, 끈 떨어진 해고자로 산지도 1년이 훌쩍 넘었다. 어느 때고 해고노동자로 살아가기가 쉽지 않았겠지만 아 왜 하필 이명박 정권에서 해고를 맞았을까. 반드시 복직될 것이라 믿고 있지만, 현 정부에서 복직투쟁이란 결코 쉽지 않다. 이명박 정부가 이 땅 노동자들에게 희망을 주지도 않고, 희망을 갖는 것조차 허
벌써 20주기다. 1991년 5월 6일 박창수위원장의 의문사는 지금까지도 의문사로 남아있다. 여름처럼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전국적으로 노동자들의 분노는 그칠 줄 모르게 정부와의 투쟁이 시작되었다. 안기부의 협박 그리고 회유 모든 수단과 방법을 통해 전노협탈퇴, 연대회의 탈퇴공작을 하였지만 이것을 거부하고 죽음으로 대항한 이가 박창수 위원장이었다. 한진중공
새벽 5시 30분. 아침 해가 공장안팎을 밝히기도 전에 휴대폰 알람소리가 귓가를 때린다. 이 시각에도 추위에 욱신거리는 몸을 지탱하며 밤새 공장을 지키고 있는 정문의 조합원 동지들을 만나러 가야하는 시간이다. 매일의 일상이지만 오늘은 어째 마음이 무겁다. 어제 한 동지와 소주잔을 기울이며 나눈 이야기가 불현듯 생각나서다. 새삼스럽지 않지만, 마음을 무겁게
저희는 법정최저임금(시급4110원)을 받는 담터공장 여성노동자입니다. 처음 입사했을때 공장에는 기계가 몇 대 없었는데 10년이 지난 지금 기계가 20대로 늘었고 올해 매출이 400억에 이르렀습니다. 경기도 포천 신평공단의 2블럭 부지도 사들였고, 공단에서 제일 땅이 많이 소유한 회사가 됐습니다. 실제 사장인 장00은 1백년 역사의 광림교회 장로고 해외선교위
2011년 다시 시작이다. 9일 NAMM 악기쇼에 가기위해 비행기를 탔다. 콜트-콜텍지회 투쟁의 디딤돌인 문화연대와 투쟁물품을 정리한 후 오후 7시 대만에 가는 비행기를 타고 우리는 출발했다. 5년차 투쟁에 들어서며 모두들 어렵고 힘들어 많이 지쳐있는 상태였지만 함께하는 동지들로 다시 힘을 낸다.재정적으로 어려움에 있는 콜트-콜텍 노동자들에게 힘을 주기 위
삶의 경쟁 속에 지친 몸을 포근히 쉬고 있을 이 시간, 지난해의 일들이 영사기의 필름마냥 스치고 지나갑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지도 해가 넘어 바뀌네요. 2010년 평생 잊지 못할 한해를 보내고 천국과 지옥을 오가며 평생 흘린 눈물보다 몇 달 동안 흘린 눈물이 더 많습니다. 지금도 꿈인지 생시인지 믿어지지 않고 지금도 내 이름을 부르면서 문 열고 들어오는
올해 1월이 시작될 때만 해도 세월이 언제가나 싶었는데 어느새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습니다. 기억나는 것이라고는 재판받으러 다닌 것과 면회오신 동지들과 얘기를 나누었던 것을 제외하면 너무나 똑같은 일상의 반복이었기에 되돌아볼 것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렇더라도 밖에 있을 때는 활동한답시고 태만히 하거나 얼렁뚱땅 넘어갔던 것들을 이 곳 안에서 다시금 재정비
유난히도 이번 겨울은 춥다. 우리는 매일 새벽 휴대폰 알람소리에 잠을 깨어 아무도 반겨주지 않는 대림자동차 공장 앞으로 달려간다. 독한 회사 만큼이나 세찬바람과 자동차 매연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이 겨울 추위보다 정리해고의 칼바람에 우리의 마음은 냉가슴이 되어 가고 노조없는 서러움에 마음의 눈물을 한없이 흘리고 있다. 2009년 말과 2010년 새해 벽
9월말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 앞에서 2주 동안 곡기를 끊는 단식농성을 하고 구미로 내려왔다 다시 찾아온 서울! 이번엔 잊혀가는 구미 KEC지회 투쟁을 다시 한 번 모든 사업장에 알리기 위해서 올라왔다. 구미에서 조합원 두 명(이복임, 이종희)과 김창기 부지회장, 그리고 나, 이렇게 네 명이다. 오늘 아침에도 이곳저곳을 전화를 한다. “구미
상근을 시작한지 정확히 401일이 됐지만 정확한 나의 퇴근시간은 모르겠다. 어찌됐든 “5분 뒤엔 반드시 퇴근하리라”는 마음가짐으로 몇 자 흘려 내려 본다. 타임오프제 시행으로 5개월째 월급이 없다. 부인의 상해보험은 벌써 해약됐고 나온 지 한 달된 둘째 아들은 다행히(?) 상해보험 하나 없는 엄마의 젖으로 생활한다. 사내 동호회비가 월
벌써 11월. 손가락을 꼽아 본다. 경주 발레오만도 직장폐쇄가 올 2월16일 벌어졌으니까 사실 10개월도 안 된다. 그러나 내 맘은 이미 1년을 훌쩍 넘은 것 같다. 그만큼 고통스럽고, 아픈 기억이다. 그리고 지금도 그 아픔은 이어지고 있다. 직장폐쇄 이후 만나보지 못했던 맘을 나눠온 동생에게 문자 한 통을 넣었다. “벌써 겨울이 온 것 같네.
요즘 교육요청이 오면 정말 도망치고 싶다. 진단은 ‘말발’로 어찌어찌해 본다지만 대안과 비전 제시는 뒷심이 딸린다. 어찌어찌 교육을 끝내고 막바로 돌아와 화장실에 한번 가는 것을 빼곤 컴퓨터 앞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6시간 전쟁을 치렀다. 술 안 마셔도 눈알이 돈다. 충남지부 역사상 처음이라는 지부교육위원회회의도 진행했다. 그렇게 한
8시 30분. ‘구로디지털단지’ 역에서 사람들이 물결처럼 쏟아져 나온다. 서울에 있는 지하철 역중 5번째로 이용객이 많은 역이다. 나도 사람들에 휩쓸려 역을 빠져나온다. 5분정도를 걸어 도착한 곳은 1공단의 한 아파트형 공장 앞. 푸른기술 조합원들이 하루종일 투쟁을 하는 곳이다. 조합원은 딸랑 5명. 할 수 있는 거라곤 직접 쓴 플래카
철농장에서 일어난다. 우리 분회 조합원이 올라와서 깨어준다. “아직까지 자여?” 겨우 일어나서 아침 담배를 입에 문다. 철농한답시고 에어콘 밑에 돗자리를 깔고 잤다. 문을 닫고 자면 얼어 죽을것 같고, 문을 열어 놓으면 모기에 뜯겨 죽을 것 같다. 대충 화장실에서 일보고 세수하고 누룽지 한 그릇 먹고 구미지부 사무실에 간다. 지부 집행
출근선전을 하기위해 일어나는 몸이 무겁다. 일상화되어버린 지라 출근선전이 하는 나도 무덤덤하고, 매일 마주치며 인사해야하는 모기업 동지들의 표정도 무덤덤하다. 일터가 재미가 없으니 출근도 재미가 없다. 2006년, 모기업인 대우정밀(주)를 S&T자본이 인수하면서 더불어 S&T의 일원이 된 S&T기전(자동차 부품 DC모터 생산). 현장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