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록달록한 색지, 색색 크레파스, 시계 모양 종이, 동네 지도가 그려진 펼침막, 과자와 사탕,『금속노조 간부기본과정』 교재와 함께 김밥이 먹음직스럽게 놓여있다.

정준현 노조 광주전남지부 자동차부품사지회장은 광주장애인복지관 사무실 책상에 교구들을 한가득 차려놓고 시계를 본다. 1월5일 목요일 오후 4시30분. 그들이 올 시간이다.

사무실 한쪽 벽에 광주전남지부 ‘노조간부 기본과정 학습소모임’에 참가하는 동지들 16명의 이름, 별명, 처음 경험한 노동, 나의 장점과 단점, 교육에서 기대하는 점 등 각자 필체로 적은 자기소개서가 빼곡히 붙어있다.

 

설렘… 이런 감정 얼마만인지

“다른 사업장 조합원 만나기가 정말 즐겁습니다. 또 만날 기대로 설레죠. 이런 기분이 얼마만인지.” 박근서 한국쓰리엠지회장의 말이다. 박 지회장은 “만남도 즐겁지만 진행강사를 하며 스스로 다짐하고 다시 배우는 과정이 돼서 좋습니다”라고 말한다.

광주전남지부 금호타이어 광주지회와 곡성지회, 한국쓰리엠지회, 자동차부품사지회, 캐리어에어컨 지회, 기아자동차지부 광주지회 동지들이 모여 간부기본과정 학습소모임 다섯 개를 꾸렸다. 공공운수노조, 교육공무직노조, 일반노조, 청년유니온 등 다른 업종 동지들도 참여한다. 한 모임 당 14명에서 16명씩, 모두 75명이다.

학습소모임을 이끄는 진행강사는 금속노조 간부기본과정 1기 강사단 훈련을 마친 정준현 자동차부품사지회장, 문동진 조직부장, 박근서 한국쓰리엠지회장, 권오산 지부 교육부장 등 네 명이다.

▲ “지회장은 지역 회의라도 가는데 저 같은 현장 간부는 10년 넘게 활동했지만 사업장 밖 사람들 만나기 쉽지 않아요. 교육에 오니 금속 조합원을 만나고 교육공무직도 만나고 정말 좋아요. 다른 노조 사정을 알게 되고 노동자는 누구나 다 똑같구나 하는 공감대가 생겨요.” 강미화 공공운수노조 광주장애인복지관지회 조합원의 말이다. 1월5일 광주전남지부 간부기본과정 2팀 학습에 참여한 노동자들이 주제 토론을 하고 있다. 사진 맨 왼쪽이 강미화 공공운수노조 조합원. 사진=신동준

 

가르치지 않고 서로 배우고, 참여하는 주체로

“노조 교육가면 금세 잠이 오는데 이 교육은 다른 세계를 본 것 같아요. 지역 동지들과 둘러앉아 속마음을 털어놓고 사업장 얘기를 나누다보면 두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르겠어요. 받아 본 교육 가운데 최고예요. 술 먹을 시간 아껴서 오는데 하나도 아깝지 않아요.”

학습소모임에 참여하는 박홍철 금호타이어 곡성지회 복지실장의 말이다. 보통 노조 교육은 조합원들을 한데 모아놓고 강의식으로 한다. 성인교육이다 보니 분위기는 소위 민방위 교육장과 흡사하다. 강사가 앞에 서서 일방적으로 쏟아내는 이야기만 한 시간 넘게 들어야 한다.

내용도 뻔해 교육시작하고 10분쯤 지나면 지루함에 졸음이 온다. 귀로 듣고 눈으로 휴대폰을 본다. 어렵게 쟁취한 교육시간인데 휴식시간 쯤으로 여기니 남는 내용이 별로 없다. 노조가 이런 강의식 교육에 대한 평가를 토대로 새로 개발한 교육 프로그램이 바로 ‘간부기본과정’이다. 기존 교육방식과 틀을 완전히 깼다.

7년차 간부인 김승룡 한국쓰리엠지회 쟁의부장은 참여하는 교육방식에 사로잡혔다. “기존 교육은 옛날 얘기만 주로 해서 현실과 동떨어진 느낌이었어요. 이 교육은 달라요. 내 경험에서 문제의식을 끌어내 얘기하다보면 ‘아하’ 하고 깨우치게 돼요. 외부강사가 이론을 가르쳐 아는 것 보다 내 얘기로 시작하니 이해가 쉽고 여럿이 의견을 보태니 해결방안이 다양하고 구체적이죠.” 서로 배우는 셈이다.

간부기본과정은 모든 과정을 토론식, 참여식으로 구성한 자기주도 학습 과정이다. 토론하다 영상 보고, 내용을 소리 내 읽고, 카드에 자기 생각을 써 발표하고, 크레파스 색칠도 한다. 말하고 보고 듣는 동시에 쓰고, 색칠하고 붙이고 발표한다. 손과 발을 움직이며 하는 공부다. 강의하지 않는다. 토론하고 공감한다. 졸고 휴대폰 보며 딴 짓하거나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 정준현 지회장은 학습소모임을 통한 현장 활동가 양성을 강조했다. “지회마다 현안이 많고 금속노조에서 내리는 사업이 많아 가랑이 찢어진다고 해요. 막상 선거할 때 간부를 뽑지 못해 허덕이는 경우가 대부분이잖아요. 노동조합을 활성화하려면 현장이 살아있어야 하고 현장활동은 지회장이 아닌 현장간부 몫입니다. 활동가 키우기가 진짜 투자죠. 술 사주고 밥 사줘서 친분으로 노동조합 간부 키우기는 한계가 있습니다. 자기 의지와 신념으로 활동할 수 있는 활동가를 길러야죠.” 사진=신동준

김원호 자동차부품사지회 대의원은 자연스레 발표력이 늘었다. “대의원 맡은 지 얼마 안 됐어요. 조합원 앞에 설 때 쑥스럽고 말이 잘 안 나왔는데 와서 공부하고 발표하다보니 생각을 정리하고 나서서 말하기가 자연스러워졌어요. 발표력이 늘었다고 해야 하나?”

 

“연대라는 게 참 뿌듯한 거구나”

간부기본과정 학습소모임을 조직하는 원칙이 있다. ▲사업장 단위를 넘어 여러 지회가 함께 구성해 금속노조는 하나라는 인식을 키울 것 ▲금속 외 타 업종 노동자를 포함해 업종을 넘어서 노동자계급 관점으로 노동문제와 세상을 보는 시각을 확장할 것 ▲토론과 참여가 어려우므로 한 팀 인원을 15명 내외로 할 것 등이다.

“지회장은 지역 회의라도 가는데 저 같은 현장 간부는 10년 넘게 활동했지만 사업장 밖 사람들 만나기 쉽지 않아요. 교육에 오니 금속 조합원을 만나고 교육공무직도 만나고 정말 좋아요. 다른 노조 사정을 알게 되고 노동자는 누구나 다 똑같구나 하는 공감대가 생겨요.” 강미화 공공운수노조 광주장애인복지관지회 조합원의 말이다.

최성옥 공공운수노조 광주전남지부 광주도시철도공사지회 조직부장은 연대를 ‘노동조합 사회성’이라고 표현했다. “학습모임에서 여러 가지 배우지만 무엇보다 사회성을 배웠어요. 다른 노조를 이해하고 공감하면 관심을 갖고 연대로 이어지죠. 이것이 노동조합 사회성이라고 생각해요. 우리 노조 안에 있을 때는 이런 거 잘 몰랐어요.”

권오산 노조 광주전남지부 교육부장은 연대 측면에서 소모임 학습을 강조했다. “언제부터인가 금속 집회에서 보건노조 깃발 안 보이고 보건노조 집회에서 금속 깃발 보기 힘들잖아요. 금속과 보건뿐 아니라 전교조, 건설, 공공, 화섬 등 다른 산별노조 집회에서 서로의 깃발 보기 어려워요. 하물며 우리 집회도 공문으로 내리고 가자고 조직해 동원하지 않으면 잘 안되는 게 현실이잖아요.”

▲ 박근서 지회장은 “단체협약 체결 투쟁을 6년 동안 했어요. 6년 싸우다보니 투쟁은 선수인데 체계적인 교육을 받지 못했어요. 단협 체결했고 한 단계 나아가는 투쟁을 하려면 간부들이 의식적으로 재무장해야 하잖아요. 교육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던 차에 딱 맞는 교육과정이 나와서 얼마나 반가운지 몰라요.” 사진=신동준

권오산 부장은 확신에 차서 말한다. “산별노조 덩치가 커지다보니 자기중심성이 강해져 지역연대 기풍이 점점 사라졌어요. 전체 노동자 총단결이 구호로만 존재하는 현실에서 학습소모임 안에서 서로 친해지고 자연스럽게 연대로 이어지는 과정이 지역연대 기풍을 복원하는 작은 출발이죠. 우리 학습소모임이 다섯 개, 75명인데 지역에서 이 동지들이 움직이면 결코 적지 않은 변화가 만들어 질 겁니다.”

 

현장 강사 혼자 11강을? “어렵지 않아요, 제가 그 증거입니다.”

“학습소모임 12명 가운데 여성이 우리 둘 밖에 없어 놀랐어요.” 강미화 광주장애인복지관지회 조합원 말에 금속노조 동지들이 와르르 웃었다. 조리 있게 말하는 공공노조 여성조합원 두 명이 함께 하니 학습 분위기가 달라지고 토론에 활력이 생겼다고 한다.

간부기본과정은 모두 11강으로 구성한 짧지 않은 과정이지만 강사는 없다. 의견 발표에 자연스럽게 활력이 생기는 이유다. 대신 진행강사가 토론 촉진 역할을 한다. 가르치려들지 않고 평등하게 둘러앉아 속마음과 생각을 털어놓는다. 선생님 앞에서 얘기하기 어렵지만 동료들과 수다 떨기는 쉬운 이치다. 진행강사가 현장에서 일하는 간부이니 조합원 상태와 현장 상황을 꿰고 있다. 세세한 부분까지 챙길 수 있어 서로 더 친밀해진다. 외부강사는 할 수 없는 일이다.

노조는 지난해 9월 간부기본과정 프로그램 개발을 완료하고 강사단 훈련을 시작했다. 9개 지부에서 진행강사 12명을 배출했다. 진행강사들은 지부에서 학습소모임을 구성해야한다. 광주전남지부와 경기지부가 시작했다.

진행강사를 맡고 있는 문동진 자동차부품사지회 조직부장은 1년6개월 된 새내기 간부지만 자신감이 넘친다. “참여식, 토론식이라고 해서 내용이 가볍지 않아요. 과연 11강을 이끌어 갈 수 있을까 스스로 의심했어요. 노조 강사단 훈련에 참가해 배우고 강의 시연을 해보니 자신감이 생기더라고요. 이 프로그램 장점 가운데 하나는 무거운 주제에 실생활 경험을 접목해 본질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저 같은 현장강사도 주제를 이끌어 가기 어렵지 않습니다.”

▲ 진행강사를 맡고 있는 문동진 자동차부품사지회 조직부장은 1년6개월 된 새내기 간부지만 자신감이 넘친다. “참여식, 토론식이라고 해서 내용이 가볍지 않아요. 과연 11강을 이끌어 갈 수 있을까 스스로 의심했어요. 노조 강사단 훈련에 참가해 배우고 강의 시연을 해보니 자신감이 생기더라고요. 이 프로그램 장점 가운데 하나는 무거운 주제에 실생활 경험을 접목해 본질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저 같은 현장강사도 주제를 이끌어 가기 어렵지 않습니다.” 사진=신동준

간부기본과정 구성은 0강 <여는 마당>으로 시작해 노동자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새로운 시각>과 노동자 계급 개념을 짚어 보는 <노동자>, 자본주의사회 지배구조를 보는 <일터>와 <삶터>, 기본소양으로 <인권과 여성>, 노동조합 역할과 산별노조를 다룬 <노동조합>, 금속노조 창립부터 현재까지 역사를 보는 <금속노조사>, 노동운동을 이끌어가는 활동가의 철학을 담은 <노동운동>, 노동운동의 새로운 전망과 모색을 다룬 <운동의 미래>, 대안사회를 다룬 <우리가 바라는 사회> 등 모두 10강이다. 중간에 하루 선택특강과 실천과제를 주고 실천과제 발표와 평가 수료식은 수련회로 진행한다.

박근서 지회장은 “단체협약 체결 투쟁을 6년 동안 했어요. 6년 싸우다보니 투쟁은 선수인데 체계적인 교육을 받지 못했어요. 단협 체결했고 한 단계 나아가는 투쟁을 하려면 간부들이 의식적으로 재무장해야 하잖아요. 교육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던 차에 딱 맞는 교육과정이 나와서 얼마나 반가운지 몰라요.”

권오산 부장은 지회 간부교육에 대한 갈증과 어려움을 해소할 수 있게 됐다고 말한다. “지회 조합원 얘기를 들어보면 간부 교육이 필요한데 소규모 간부교육에 외부강사를 매번 데려오자니 예산도 만만치 않고 자체로 하자니 교육 프로그램이나 교안이 없어 손을 못 대고 있더군요. 이번 간부기본과정 프로그램은 내용이 금속노조에 맞고 외부에 의존하지 않는 현장 강사가 진행하니 간부 교육하기 딱이에요.”

 

학습소모임과 활동가 양성, 금속노조 백년대계

간부기본과정은 한 마디로 학습을 이용한 동시다발, 세포분열식 활동가 양성 프로젝트다. 기본과정 학습을 마친 사람이 금속노조 강사훈련과정을 수료하면 진행강사가 된다. 진행강사 열 명이 참가자 열 명 소모임 열 개를 조직하면 조합원 1백 명이 학습하게 된다. 학습을 마친 참가자가 진행강사가 되는 과정을 반복해 끊임없이 학습 참가자를 만들어내는 원리다.

▲ 권오산 부장은 지회 간부교육에 대한 갈증과 어려움을 해소할 수 있게 됐다고 말한다. “지회 조합원 얘기를 들어보면 간부 교육이 필요한데 소규모 간부교육에 외부강사를 매번 데려오자니 예산도 만만치 않고 자체로 하자니 교육 프로그램이나 교안이 없어 손을 못 대고 있더군요. 이번 간부기본과정 프로그램은 내용이 금속노조에 맞고 외부에 의존하지 않는 현장 강사가 진행하니 간부 교육하기 딱이에요.” 사진=신동준

정준현 지회장은 학습소모임을 통한 현장 활동가 양성을 강조했다. “지회마다 현안이 많고 금속노조에서 내리는 사업이 많아 가랑이 찢어진다고 해요. 막상 선거할 때 간부를 뽑지 못해 허덕이는 경우가 대부분이잖아요. 노동조합을 활성화하려면 현장이 살아있어야 하고 현장활동은 지회장이 아닌 현장간부 몫입니다. 활동가 키우기가 진짜 투자죠. 술 사주고 밥 사줘서 친분으로 노동조합 간부 키우기는 한계가 있습니다. 자기 의지와 신념으로 활동할 수 있는 활동가를 길러야죠.”

박근서 지회장은 “아, 이거구나 했어요. 이번 소모임 학습을 마무리하면 나주 지역에 가서 학습소모임을 꾸릴 겁니다. 지회를 섞고 산별을 섞어 학습하면 자연스럽게 시각이 넓어지고 연대활동으로 이어져요”라며 포부를 밝혔다.

문동진 조직부장은 학습 진행에 자신감과 탄력이 붙었다. “정말 저는 제가 할 수 있을 거라 생각 못했는데 하다 보니 점점 자신감이 생기고 자부심을 느낍니다. 잘하고 싶어요. 금속노조 1기 강사인데 우리가 잘해야 다른 지부에 소문이 나죠. 이 프로그램을 활성화하는 책임이 있고요.”

광주전남지부 진행강사 네 명은 매주 목요일 학습을 진행하기 전 회의를 열어 지난 과정 평가와 다음 과정 준비를 꼼꼼히 확인하고 챙긴다. 이 네 명도 첫 걸음이기 때문이다. 첫 걸음에 동지 75명을 모아 이끄는 배포가 있다. 의지가 있고 뜻이 맞으면 무엇이든 해낼 수 있는 이가 노조 활동가라는 진리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금속노조 간부기본과정은 광주전남지부와 경기지부, 충남지부가 먼저 시작했다. 전북지부, 인천지부, 서울지부, 경남지부, 포항지부 등이 학습소모임 조직을 준비하고 있다. 전체 지부로 확대할 예정이다. 금속노조를 이끌어 갈 활동가 양성. 금속노조 백년대계 신호탄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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