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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기] 제5차(2004년) 中國醫學·歷史遺跡 探訪記(18)
2005년 12월 09일 () 14:04:00 webmaster@mjmedi.com
   
 
□ 제왕지향 천수시 □

나는 정말 아쉬움을 많이 느꼈다. 이제 이곳 천수를 떠나면 다시 오기가 어려운데 평소에 가보고 싶었던 곳을 이곳까지 와서도 보지 못하고 그냥 떠나다니 너무 안타깝다.
천수시는 진성구(秦城區), 북도구(北道區)의 2개의 구와 감곡현(甘谷縣), 무산현(武山縣), 진안현(秦安縣), 청수현(淸水縣), 장가천회족자치현(張家川回族自治縣)의 5개의 현으로 구성되어 있다. 천수는 예로부터 하나의 왕조를 열었던 인물들이 많이 배출되어 제왕향(帝王鄕)이라고도 부른다.

첫째로, 전국시대를 통일했던 진(秦)나라의 발상지가 이곳이다. 둘째로, 16국 시대 때 전진(前秦)의 건립자 저족(저族) 부홍(부洪)은 진안현 사람이고, 후진을 건립했던 강족(羌族) 요장(姚장)은 무산현 사람이고, 후량(后凉)을 건립했던 저족 여광(呂光)은 약양(略陽; 지금의 진안)사람이고, 서량(西량)의 건국자 이고(李暠)는 천수시 사람이고, 구지국(仇池國)을 건립했던 저족의 양씨(楊氏)는 청수현 사람이고, 성한(成漢)을 열었던 이특(李特)은 진안현 사람이다. 셋째로, 당나라를 건국한 이연(李淵)은 이고(李暠)의 후예로 그 원적이 천수시 진안현이다.

① 맥적산 석굴, 가정의 소재지 천수시

이곳 천수에서 시간이 있다면 제일 먼저 가보고 싶은 곳은 맥적산(麥積山) 석굴이다. 맥적산 석굴은 돈황·운강·용문석굴과 더불어 중국 4대 석굴 중의 하나이다. 이 석굴은 194개의 동굴에 진흙으로 만든 소상 석각 7000여건과 벽화가 보존되어 있는 석굴로 동방조소진열관(東方雕塑陳列館)이라는 미칭을 갖고 있다.

다음으로 가보고 싶은 곳은 북도구에 있는 괘태산(卦台山)이다. 이곳은 복희씨가 팔괘를 처음 그렸다는 곳으로 복희묘(伏羲廟)와 용마가 그림을 지고 나왔다는 용마동(龍馬洞) 등이 있다. 천수는 삼국지와 관련된 인물과 고전장이 있는데 강유(姜維)의 고향은 감곡현으로 이곳에는 강유의 무덤이 있고 관우에게 사로잡혔던 방덕의 고향은 무산현이다. 그리고 228년 제갈공명이 1차 북벌시에 마속이 장합에게 패했던 가정(街亭)은 진안현의 농성진(농城鎭)과 장가천현의 용산진(龍山鎭)의 사이이다.

② 황제의 고향으로 알려진 청수현 헌원곡

마지막으로 한 두가지 더 이야기 한다면 이곳 사람들은 황제의 고향을 천수의 청수현(淸水縣)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수경주(水經注)에 “황제는 천수의 헌원곡(軒轅谷)에서 태어났다”고 하였고 감숙통지(甘肅通志)에서는 “헌원곡애(軒轅谷隘)는 현의 동쪽 70리에 있는데 황제가 이곳에서 태어났다”고 하였으며 직예진주신지(直隸秦州新志)에서는 “황제가 헌원지구(軒轅之丘)에서 태어나 헌원이라 한다”고 하였다. 청수현의 삼문향(三門鄕)에 삼황구(三皇溝)가 있는데 또 헌원곡(軒轅谷)이라고 부른다. 이곳에는 또 헌원요가 있는데 헌원의 어머니 부보(附보)가 황제를 데리고 머물던 곳이라 한다.

③ 최가언의 원적지 천수

그리고 맥결(脈訣)을 지어 당시까지의 맥학의 내용을 총정리 했던 최가언(崔嘉彦)의 원적이 이곳 천수라고 한다. 최가언은 송나라 휘종 때의 도사로 강서성 남강(南康) 사람이다. 임금으로부터 자허(紫虛)라는 호(號)도 하사 받았는데 말년에 여산(廬山)의 서원암(西原庵)에서 머물면서 제자들을 가르쳤다. 이 중 대표적인 사람이 유개(劉開)로 그는 맥에 정통하여 당시의 사람들이 유삼점(劉三點; 삼점은 촌관척을 진맥하는 것을 말함)이라고 불렀다. 유개는 주종양(朱宗陽) 엄용화(嚴用和)에게 전하고 다시 장도중(張道中; 號는 玄白子)에게 삼전하였는데 장도중은 최가언과 유개의 맥학을 확장하여 현백자서원정파맥결(玄白子西原正派脈訣)을 지었다. 그가 현백자서원(玄白子西原)으로 이름을 지은 것은 그의 조사(祖師) 최가언이 일찍이 여산의 서원암(西原庵)에 머물렀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학문의 유파를 후세에서 서원학파(西原學派)라고 하는데 최가언은 서원암맥학유파의 뿌리가 된다고 말할 수 있다.

□ 수양산 □

천수톨게이트를 빠져나가 진안현(秦安縣)으로 진입하니 농상과과제일현(농上瓜菓第一縣)이라는 글이 씌어 있다. 감숙성에서 채소과일과 나무과일을 가장 많이 생산하는 현이란 뜻이다. 고속도로는 왕복 4차선으로 길이 잘 닦여지고 주위가 잘 정리되어 있었다. 표지판을 보니 참류(참柳)고속도로라 되어 있다. 아마 정서시(定西市)에 있는 참구(참口)에서부터 안서현(安西縣)에 있는 유원진(柳園鎭)까지를 말하는 것 같다. 나는 가이드에게 수양산(首陽山)을 거쳐 갈 수 있느냐고 물었다. 왜냐하면 이번여행의 스케줄에 위원현(渭源縣))의 연봉향(蓮峰鄕)에 있는 수양산(首陽山)의 이제묘(夷齊墓)와 사당을 방문하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가이드는 자기들도 알아보았지만 현실적으로 가기가 어렵다고 한다. 오늘 난주에 도착해서 저녁식사 후 기차탈 시간이 빠듯하기 때문이라 한다. 나는 기대했던 마음이 아쉬움으로 바뀌었다. 아, 꼭 한번 가보고 싶었는데!
중국에서 백이숙제가 고사리를 캐 먹다가 돌아가신 수양산이 내가 아는 곳만도 다섯 곳이나 된다.

첫째, 설문(說文)에서 수양산은 요서(遼西)에 있다고 했다. 이 설도 무시하기 어려운 특징이 있는데 백이숙제가 고죽국 사람이라는 것은 다 알고 있는 내용이다. 그런데 옛 고죽국이 있었던 곳이 지금의 하북성 노룡현(盧龍縣)근처이다. 지금의 중국역사 지도집을 보더라도 노룡현 치소 아래 고죽성(孤竹城)이 표시되어 있다. 지리지(地理志)에도 요서 영지현(令支縣)에 고죽성이 있다고 했는데 영지현은 지금의 천안현(遷安縣) 서쪽으로 노룡현과 붙어 있다. 그렇다면 백이숙제가 고향의 수양산에 돌아와 고사리를 캐 먹었다는 것인데 연암 박지원이 사행길에 이곳 노룡현의 수양산에 들렀을 때 백이숙제를 제사지내는 이제묘(夷齊墓)가 있어 참배를 하였다는 기록이 있고 1997년 이규태 조선일보 논설위원이 쓴 신열하일기에 보면 이제묘는 사라졌지만 백이숙제가 마셨다는 이제정(夷齊井), 이제가 살았던 마을 표시인 이제리(夷齊里), 그리고 산속의 바위에 새겨진 이제독서처(夷齊讀書處)는 남아 있었다고 하였다.
수경주(水經注)에 유수(濡水; 지금의 난하)가 남쪽으로 흘러 고죽성(孤竹城)의 서쪽을 지나 오른쪽에서 현수(玄水; 지금의 靑龍河)와 합하고 현수는 서남쪽으로 흘러 고죽성의 북쪽을 흘러 서쪽으로 유수(濡水)에 합한다고 하였으니 지금의 노룡현을 중심으로 고죽국이 있었다는것만은 확실하다. 혹자는 노룡현 동남쪽에 있는 양산(陽山)이 수양산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둘째, 대연지(戴延之)의 서정기(西征記)에 “낙양의 동북쪽에 수양산이 있는데 이제사(夷齊祠)가 있다고 하였다. 이곳은 지금의 하남성 언사현(偃師縣)의 서북쪽에 있는 북망산의 봉우리 중의 하나로 지금도 백이숙제의 무덤이 남아있다고 한다.

셋째는 서안시의 호현(戶縣)과 주지현(周至縣)의 사이에 있는 수양산(首陽山)이다.

넷째는 산서성의 영제현(永濟縣)에 있는 수양산이다. 이 설이 가장 많은 지지를 받고 있는데 중조산(中條山)의 머리(首)의 남쪽(陽)에 위치하기 때문에 수양이라 이름했다고 한다.
산위에는 이현사(二賢祠)가 있는데 백이묘(伯夷廟), 이제묘(夷齊廟)라고도 하며 무덤도 있다고 한다.

다섯째가 우리들이 이번에 방문하고자 했던 위원현(渭源縣)의 수양산으로 연봉향(蓮峰鄕) 향당구(享堂溝)에 위치하고 있다고 한다. 무덤은 수양산의 평평한 곳에 있고 무덤 앞에는 석비(石碑)에 “백세지사(百世之師)”와 “상일민백이숙제지묘(商逸民伯夷叔齊之廟)”란 글이 새겨져 있는데 청나라 때 섬감총독(陝甘總督)이던 좌종당(左宗棠)이 쓴 글이라 한다.
이외에 기양(岐陽)의 서북쪽에 있는 수양산이라는 설이 있다고 하는데 기산(岐山)의 주위인 듯 하나 유적에 대해서는 전해오는 바가 없다. <계속>

윤창열
대전대 한의대 교수, 대한한의학원전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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