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숙이 보이십니까.

민주주의는 어디로 갔는가.

전태일이 풀빵을 사주었던 여공들은 어디서 굳은살 배긴 손으로 침침한 눈을 비비며 아직도 미싱을 돌리고 있는가.

아니면 LG트윈타워 똥물 튄 변기를 빛나게 닦다가 잘렸는가.

아니면 인천공항의 대걸레만도 못한 하청에 하청노동자로 살다가 잘린 김계월이 됐는가.

그도 아니면 20년째 최저임금 코레일 네트웍스의 해고자가 되어 서울역 찬 바닥에 앉아 김밥을 먹는가.

노동 존중 사회에서 차헌호는 김숙억은 변주현은 왜 아직도 비정규직인가.

왜 청년들은 비정규직으로 차별과 멸시부터 배워야 하며

페미니스트 정권에서 왜 여성들은 가장 먼저 잘리며 가장 많이 죽어가는가.

일자리를 최우선으로 지키겠다는 정권에서 대우버스, 한국게이츠, 이스타 노동자들은 왜 무더기로 잘렸으며 쌍차와 한진 노동자들은 왜 여전히 고용불안에 시달리는가.

박창수, 김주익을 변론했던 노동인권 변호사가 대통령인 나라에서 왜 아직도 노동자들은 굶고 해고되고 싸워야 하는가.

최강서의 빈소를 찾아와 미안하다고 말한 분이 대통령이 된 나라에서 왜 아직도 노동자들은 여전히 죽어가는가.

김용균, 김태규, 정순규, 이한빛, 김동준, 홍수연은 왜 오늘도 죽어가는가.

세월호, 스텔라데이지호는 왜 아직도 가라앉아 있으며 유가족들이 언제까지 싸워야 하는가.

이주노동자들은 왜 비닐하우스에서 살다 얼어 죽어야 하는가.

왜 문정현 신부님은 백기완 선생님은 박정희 정권에서 시작한 싸움을 아직도 멈추지 못하는가.

전두환 정권에서 해고된 김진숙은 왜 36년째 해고자인가.

그 대답을 듣고 싶어 34일을 걸어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 약속들이 왜 지켜지지 않는지 묻고 싶어 한발 한발 천릿길을 걸어 여기까지 왔습니다.

36년간 나는 유령이었습니다. 자본에게 권력에게만 보이지 않는 유령이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님 내가 보이십니까.

함께 싸워왔던 당신이 촛불의 힘으로 대통령이 된 후에도 여전히 해고자인 내가 보이십니까.

보자기 덮어쓴 채 끌려가 온몸이 피떡이 되도록 맞고 그 상처를 몸에 사슬처럼 지닌 채 36년을 살아온 내가 보이십니까.

최저임금에 멸시의 대명사인 청소 일자리를 지키겠다고 울며 싸우는 이 노동자들이 보이십니까.

“아빠 왜 안 와”라고 묻는 세 살짜리 아이에게 “아빠는 농성장이야”라는 말을 어떻게 설명할지 모르겠다는 이 노동자들이 보이십니까.

동지 여러분, 민주주의는 싸우는 사람들이 만들어 왔습니다.

과거를 배반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입술로만 민주주의를 말하는 자들이 아니라 저 혼자 강을 건너고 뗏목을 버리는 자들이 아니라 싸우는 우리가 피 흘리며 여기까지 온 게 이 나라 민주주의입니다.

먼 길 함께 걸어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살을 깎고 뼈를 태우며 단식하신 동지들 너무 고생하셨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먼 길을 가야 할지 모를 우리들.

포기하지 맙시다. 쓰러지지도 맙시다. 저도 그러겠습니다.

웃으면서 끝까지 함께 투쟁!

2021년 2월 7일 청와대 앞에서.

 
저작권자 © 금속노동자 ilabo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