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의 마지막 날이고, 새해를 맞이해야 하는 12월 31일 또 한 명의 산재 사망 노동자의 유가족이 국회 앞에서 사고 원인 규명과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했다. 

12월 23일 포스코 포항제철소에서 오토바이로 출근하던 정성수 씨가 덤프트럭에 깔려 사망했다.

금속노조는 31일 오후 고인의 유가족과 기자회견을 열고, “17년 동안 포스코에서 일한 노동자가 공장에서 사망했는데 9일이 지나도록 사과하는 이도, 책임을 지는 이도 없었다”라고 분노했다. 

노조와 유가족은 “포스코는 고인의 죽음을 ‘단순 사고’로 매도하는 파렴치한 행태를 자행하고 있다. 포스코는 즉각 사과하고 재발방지대책을 마련하라”라고 촉구했다.

▲ 금속노조가 포스코 산재사망 노동자 고 정성수 씨 유가족과 함께 12월 3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고 정성수 노동자 유족 입장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사고 원인 규명과 포스코의 진정한 사과,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변백선
▲ 포스코 산재사망 노동자 고 정성수 씨의 아들 정하준 씨가 12월 3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연 ‘고 정성수 노동자 유족 입장발표 기자회견’에서 사고 원인 규명과 포스코의 진정한 사과 등을 촉구하고 있다. 변백선

포항에서 올라온 고 정성수 노동자의 아들 정하준 씨는 “우리 가족은 사고발생 경위와 원인에 대한 설명을 어디서도 듣지 못했다. 포스코에서 발생한 사고임에도 포스코와 한진은 물론이고 노동부조차 유족을 찾아오지 않았다”라고 규탄했다. 정하준 씨는 “사고가 난 현장에 들어가지 못하는 답답함에 포스코에 전화했지만 사고를 인지하지도 못하고 있었다”라고 밝혔다.

정하준 씨는 “사고 직후 아버지는 헬멧을 본인 스스로 벗을 정도로 의식이 있었고 30분 정도 살아 있었다고 한다”라며 “안전을 위한 최소한의 시설조차 없는 도로에서 일어난 사고다. 사고 직후 출동한 포스코119의 잘못된 조치로 인한 사망사고”라고 폭로했다.

사고 사실도 모르는 포스코, 현장은 훼손

정하준 씨는 “유족의 요구는 간단하다. 명확한 사고 원인을 알고 싶다. 그리고 책임자가 사과해야 한다”라며 “평생 일한 아버지의 죽음이 억울한 죽음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호소했다.

정성수 씨 유족이 12월 27일 포스코 현장을 찾았을 때 포스코는 이미 현장의 사고 흔적을 훼손했다. 정성수 씨의 오토바이는 한쪽에 치워져 천으로 덮여있었고, 현장에 가로등, 신호등, 차선 등 시설은 아무것도 없었다.

▲ 김호규 금속노조 위원장이 12월 3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연 '포스코 산재사망 노동자 고 정성수 씨 유가족 입장발표 기자회견'에서 “최소한의 산업안전보건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은 중대재해이다. 포스코는 자신의 잘못으로 일어난 노동자의 죽음에 책임을 져야 한다”라고 요구하고 있다. 변백선
▲ 포스코 산재사망 노동자 고 정성수 씨의 유가족이 12월 3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연 ‘고 정성수 노동자 유족 입장발표 기자회견’을 마친 후 20여 일째 국회 본청 앞 천막에서 단식투쟁하는 고 김용균 청년 노동자 어머니 김미숙 씨와 고 이한빛PD 아버지 이용관 씨를 만나 인사를 나누고 있다. 변백선

김호규 금속노조 위원장은 기자회견에서 “고 정성수 노동자는 포스코가 현장에 산업안전보건 시스템을 제대로 만들지 않아 죽었다”라고 규정했다. 김 위원장은 “최소한의 산업안전보건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은 중대재해이다. 포스코는 자신의 잘못으로 일어난 노동자의 죽음에 책임을 져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정성수 노동자의 유가족은 기자회견을 마친 뒤 국회 본청 앞에서 천막을 치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며 20여 일째 단식투쟁을 하는 고 김용균 노동자 어머니 김미숙 씨와 고 이한빛PD 아버지 이용관 씨를 찾아 인사를 나누고 서로를 응원했다.

고용노동부 포항지청은 12월 24일 사고가 발생한 도로에 차량계 건설기계 작업을 하지 못하도록 ‘중대재해 시 부분 작업중지 명령’을 했다. 포스코는 신속하게 가로등을 설치하고 반사경을 추가로 세우는 등 도로 개선 조치에 나섰다. 현장 노동자들에 따르면 이마저도 부분 작업중지 명령이 내려진 도로에만 한정된 조치일 뿐, 같은 위험요인이 있는 다른 사내 도로는 똑같은 상태로 방치하고 있다.

포스코에서 한 달 사이 다섯 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지만, 포스코는 여전히 노동자의 안전을 위한 근본 안전시스템 개선이 아닌 노동부 작업중지 명령만 피해가려는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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