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금속노조를 ‘강성노조’라고 한다. 자본과 언론 등이 강성노조라는 이미지를 덧씌운 면도 있지만, 노조 간부나 조합원들도 금속노조가 강성이라는 데 큰 이의를 달지는 않는다.

국어사전은 강성이라는 말의 뜻을 “센 성질 또는 열등감이 없고 낙관적이며 자신만만하고 전투적인 성격, 분노나 증오 따위의 감정 상태”라고 정의하고 있다. 전투, 세다. 분노, 증오……. 단어가 주는 중압감부터 만만찮다. 사실 금속노조 간부와 조합원들의 일상은 구조조정, 정리해고, 파업, 총력투쟁, 결의, 계급, 농성 등 무거운 단어들에 둘러싸여 있다. 문제는 단어는 말로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말은 무게가 되어 지부, 지회 간부들과 투쟁사업장 조합원들의 신경을 짓누른다. 결국 “대단한 의욕으로 일에 몰두하던 사람이 극도의 신체 정신 피로감으로 무기력해지는 번 아웃 상태”가 된다.

그래서 우리는 묻는다. 그대 마음 안녕하냐고

금속노조가 11월 5일부터 6일까지 충북 영동에서 ‘건강한 조직과 소통을 위한 마음 돌봄 수련회’를 열었다. 이번 수련회는 여러 투쟁사업장 조합원과 간부들이 받는 스트레스를 다소 해소하고 투쟁 과정에서 다친 마음을 치유하고자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마련한 자리다.

▲ 금속노조 지부 지회 간부와 조합원들이 11월 5일 충북 영동군 레인보우연수원에서 연 ‘건강한 조직과 소통을 위한 마음 돌봄 수련회’에서 단체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영동=변백선
▲ 금속노조 지부 지회 간부와 조합원들이 11월 5일 충북 영동군 레인보우연수원에서 연 ‘건강한 조직과 소통을 위한 마음 돌봄 수련회’에서 몸풀기 활동을 하고 있다. 영동=변백선
▲ 금속노조 지부 지회 간부와 조합원들이 11월 5일 충북 영동군 레인보우연수원에서 연 ‘건강한 조직과 소통을 위한 마음 돌봄 수련회’에서 마음열기 산책 명상을 하고 있다. 영동=변백선

백일자 노조 문화국장은 “자본과 정권에 맞서 치열하게 투쟁하다 보면 어느 순간 에너지를 모두 소진한 자신을 보게 된다. 그런데 노동조합이라는 공동체 안에 동지들끼리 서로 활력을 줄 힘이 있다. 공동체의 평등한 조직문화 안에서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소통하는 과정을 통해 지친 마음에 위로와 힘을 줄 수 있다”라고 마음 돌봄 수련회 의미를 설명했다.

마음 돌봄은 무너진 균형을 찾는 일

안대로 눈을 가린 사람을 다른 사람이 손을 잡고 안내했다. 온통 돌멩이투성이인 강가를 옆 동지의 안내를 받으며 한 걸음씩 내디딘다. 눈을 가려 앞을 볼 수 없는 만큼 발바닥에 모든 신경을 집중해 돌멩이의 굴곡을 느끼며 걷는다. 걷기 명상이다.

노동자 심리 치유사업단 <두리 공감> 이주미 강사는 “나의 행위를 온전히 알아차림으로써 나 자신의 상태를 자각하는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눈을 가리고 걸음으로써 내가 걷는 행위에만 집중합니다. 주의를 집중함으로써 현재를 온전히 자각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을 통해 내면을 들여보는 계기를 만들어 보세요.”

조합원들은 마음 돌봄 활동이 주는 의미를 들었다. <두리 공감> 장경희 강사는 “마음 돌봄의 핵심은 균형입니다. 세상을 이루는 나와 내가 아닌 것 사이의 균형을 찾는 일, 어떤 문제가 발생해도 ‘나는 괜찮아’라고 자기 통제력을 유지하는 일이 마음 돌봄입니다”라고 설명했다.

장경희 강사는 “노조를 삶 자체로, 노조가 없으면 나도 없다는 사람들은 ‘노조 간부는 설득력, 일관된 원칙, 조합원에 대한 신뢰, 갈등 조정 능력, 정확성, 계급성, 균형감, 결단력, 통솔력, 투쟁력, 강한 의지, 중장기 안목과 비전, 여유와 배포, 명석한 두뇌 등을 갖추어야 한다’라고 생각합니다. 설문 결과 이 사람들 가운데 28%가 우울증 고위험군으로 나왔습니다”라고 말했다.

물론 금속노조 간부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더 많은 요구가 쏟아졌다고 한다. “이런 생각에 맞추려다 보니 간부와 활동가들은 자신을 갈아서 노조에 쏟아붓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본인을 괴롭히고 힘들겠습니까.”

▲ 금속노조 지부 지회 간부와 조합원들이 11월 5일 충북 영동군 레인보우연수원에서 연 ‘건강한 조직과 소통을 위한 마음 돌봄 수련회’에서 마음돌봄 활동의 의미에 대한 강의를 듣고 있다. 영동=변백선
▲ 금속노조 지부 지회 간부와 조합원들이 11월 5일 충북 영동군 레인보우연수원에서 연 ‘건강한 조직과 소통을 위한 마음 돌봄 수련회’에서 성격유형검사(MBTI)를 진행하고, ‘우리는 어떻게 소통하고 있나’에 관해 분반토론을 벌이고 있다. 영동=변백선
▲ 금속노조 지부 지회 간부와 조합원들이 11월 5일 충북 영동군 레인보우연수원에서 연 ‘건강한 조직과 소통을 위한 마음 돌봄 수련회’에서 평등인식을 진단하는 성평등 보드게임에 참여하고 있다. 영동=변백선

장경희 강사는 “마음 돌봄 활동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돌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일입니다. 몸과 마음이 보낸 신호를 알아차리지 못하다 나중에 후회하곤 합니다. 지금부터라도 내 마음 상태를 점검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거기서부터 마음 돌봄은 시작합니다”라고 설명했다.

걷기 명상으로 나의 내면 들여다보기,
MBTI 검사로 나와 동료 이해하기


이어 조합원들은 MBTI 성격유형 검사를 했다. MBTI(Myers-Briggs Type Indicator)란 모녀인 마이어스와 브릭스가 정신분석가 카를 융의 심리 유형론을 토대로 고안한 성격유형 검사 도구이다. MBTI는 수검자를 네 가지 기준에 따라 모두 열여섯 개의 심리유형으로 분류한다.

<선언>의 정은진 강사는 “기업이 노조를 통제할 목적으로 MBTI를 악용해 노조 대의원과 간부의 성향을 분석한 실제 사례가 있다”라고 언급했다. 정은진 강사는 “MBTI는 사람 사이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 60여 년에 걸쳐 많은 사람을 조사하고 면담해 만들었다. 노동자 계급도 노조 강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라고 강조했다.

검사에 참여한 조합원들은 MBTI를 통해 자신의 성격유형을 더욱 잘 알게 됐고, 다른 성격유형을 가진 동료의 행동과 사고를 좀 더 이해하는 기회가 됐다고 입을 모았다.

장기투쟁 사업장인 노조 구미지부 아사히비정규직지회 조합원들은 ‘투쟁하는 동지의 소진(번 아웃) 예방과 관리’라는 주제로 서로의 생각을 이해하는 순서를 진행했다. 지회 조합원들은 자기 생각과 살아온 인생의 굴곡을 그림으로 표현하며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됐다.

지회 조합원은 “힐링이 많이 됐다. 동지들과 대화를 나누며 마음속 응어리가 많이 풀렸다. 또 기회가 오면 참가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둘째 날 일정으로 조합원들은 성 평등 보드게임 ‘평등 GO! 차별 STOP’에 직접 참여했다. 성 평등 보드게임은 <한국여성단체연합>이 “성 평등 이슈에 관한 공감대 확산과 문제 해결을 위한 개인과 공동체, 국가 차원의 실천을 논의할 수 있는 도구”로 제작했다. 게임 참가자들은 주변에서 흔히 일어나는 80가지 성차별·성폭력 사례를 ‘해결 카드’를 통해 서로 논의하며 해결해야 한다.

노조는 수련회를 마치며 “앞으로 해고자와 간부를 대상으로 특화한 프로그램을 마련할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구조조정과 정리해고, 노동법 개악 국면 속에 ‘마음 돌봄’이라는 말이 한가하게 들릴 수 있다. 그러나 매일 벌어지는 숨 막히고 긴장된 투쟁과 강화한 노동 강도로 인한 직무 스트레스에 지쳐가는 조합원의 마음을 위로하는 일에도 많은 관심이 필요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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