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사상구에 자리 잡은 수술용 칼과 바늘을 만드는 회사 아이리에 노동조합이 있다. 금속노조 부산양산지부 아이리지회는 2013년 9월 노조 부산양산지부의 식구가 된 조직이다. 조합원들이 합심해 지회를 만들고 견실하게 조직을 지켜 조합원을 불렸다.

“노조해서 좋은 것만 있고 나쁜 건 없는데요.” 아이리지회 간부들은 노조하고 나빠진 점이 있느냐는 질문에 기다릴 사이도 없이 대답했다.

배미순 지회장은 “아이리에 휴일이 없었어요. 그러니까 일요일에 쉬었지만, 공휴일에 어김없이 출근해서 일 했던거죠”라고 말했다. 노조를 만들며 단협으로 쉬는 날을 정하고, 명절휴무와 하계휴가를 정비했다. 노조를 만들고 알음알음 눈치 보며 쓰던 휴가가 단협에 따라 당당히 누리는 권리가 됐다. 화장실에 휴지가 없어 각자 준비해 들고 다니던 때가 있었지만 지금은 옛날이야기다.

 

노조 없던 때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식당도 엄청 구식이었죠. 열악하기 짝이 없었죠. 직원 중에 당번을 정해서 일하다가 시간되면 밥하러 식당에 내려가야 했어요. 부식비가 없어서 매일 멀건 된장국에 나물 반찬 해서 밥을 먹었죠. 식사시간은 40분이었고요.”

아이리지회 간부들은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제대로 된 식당에 회사에서 제공하는 밥을 먹고 있지만, 이렇게 환경이 바뀐 지 불과 몇 년 전이다. 하지만, 노동조합 활동이 물 흘러가듯 쉽게 풀리지만은 않았다.

배미순 지회장은 “작년에 아이리에 복수노조가 생겼습니다. 지회 조합원의 제보로 비밀리에 준비하던 복수노조를 파악했죠. 복수노조를 인지하고 3개월 만에 상황을 정리했습니다. 복수노조는 해체됐고, 주범은 회사를 나갔습니다”라고 떠올렸다. 아이리지회 간부들은 복수노조로 노조파괴를 겪은 사업장 사례를 보며 큰 위기의식을 느겼다고 했다.

배미순 지회장은 “조합원 중에 노조가 여러 개 생기면 경쟁해서 노동자 조건도 더 좋아지는 것 아니냐고 묻던 사람이 있었죠. 그럴 때 복수노조가 어떤 식으로 노동자 사이를 갈라놓는지, 노동조건을 어떻게 갉아 먹는지 설명했죠”라고 경험을 풀어냈다.

▲ 배미순 지회장, 김진순 수석부지회장, 이수진 사무장이 (왼쪽부터) 아이리지회 깃발 앞에 서 있다. 부산=성민규

노조를 지키자며 조합원들이 나섰다. 전 조합원이 복수노조에 반대하며 세 달 동안 출근집회를 이어갔다. 지회 간부들이 놀랄 정도로 조합원들의 참석률과 열의가 높았다. 회사는 조합원들의 의지를 확인하고 복수노조 카드를 슬그머니 내려놨다.

지회 간부들은 “조합원들이 노조 없던 때, 어려웠던 때가 기억났나 봅니다. 노조 만들면서 좋아진 현장의 환경이 조합원들이 뭉치는 힘이 됐습니다”라고 평가했다.

 

금속노조는 무서운 조직 아닌 이기는 조직

“한진중공업 싸움을 언론에서 보고 금속노조라면 무서운 조직이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제가 금속노조 조합원이 될 줄 누가 알았나요.”

배미순 지회장은 금속노조에 가입한 경위를 설명하며 민주노총부터 한국노총까지 가입할 조직을 알아봤다고 얘기했다. 아이리지회 간부들은 노조 부산양산지부와 함께 초동모임을 하며 금속노조에 관한 확신이 섰다고 설명했다. 아이리는 그렇게 사상공단의 유일한 금속노조 사업장이 됐다.

배미순 지회장은 “만드는 물건은 다르지만 제조업 노동자가 겪는 환경과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죠”라며 “금속노조는 공장의 어려움을 사업장 넘어 공유하고, 함께 싸울 수 있는 조직입니다. 노하우와 저력이 있습니다”라고 덧붙였다.

아이리지회 간부들은 노동환경을 개선하고, 노조 파괴에 맞서 싸우면서 금속노조에 덧씌워진 강성 이미지를 다르게 바라보게 됐다고 말했다. 금속노조가 조합원을 위해 싸우지 않고, 어려운 사업장을 내버려뒀다면 강성이라는 말을 듣지 않았을 거라고 했다.

배미순 지회장은 “아이리만 잘하면 되지 왜 바깥일에 신경 쓰냐는 불만이 있어요. 그런데 아이리지회 파업 출정식에 연대온 동지들을 보며 또 한번 느꼈습니다”라며 “연대의 힘이 크다. 우리 힘에 노조의 힘을 더하면 파장이 더 커진다는 사실 알게 됐죠”라고 설명했다.

아이리지회 간부들은 올해 지회 사업에서 조합원 교육 비중을 확 높였다고 한다. 조직을 더 탄탄하게 만들기 위해서다. 아이리는 금속노조 부산양산지부 집단교섭에 참가한지 2년째다. 사업장을 넘어선 교섭이 낯설어 올해 제시한 노조의 공동요구안에 관한 질문이 많이 들어온다고 했다.

아이리지회 간부들은 안으로 조합원 교육과 토론을 벌이고, 밖으로 미조직 사업에 결합해 서부산의 노동자들에게 노조를 만들자고 선전하고 있다. 아이리지회 간부들은 자기 사업장에 노조를 만들고 싶지만 주저하는 사람들에게 힘을 주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배미순 아이리지회장은 “우리가 싸워서 이길 수 있을까 묻기 전에 ‘한번 해보자, 이기려고 하는거다. 끝까지 가보자’라는 마음으로 나서면 못할 게 없어요. 혼자 할 수 없다면 주변 동료들과 함께 그리고 금속노조와 함께하면 됩니다”라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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