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상담하다 분노했다. 턱없이 낮은 임금과 장시간 노동에 염증을 느낀 노동자들이 우여곡절 끝에 지회를 설립하고 교섭을 요구했다. 지회는 단수노조로서 교섭대표노조가 돼 교섭을 3~4차례 벌이고 있었다. 갑자기 회사 측의 주도로 만든 것으로 의심되는 기업노조가 나타났다.

기업노조가 교섭을 요구하자 그동안 지회와 벌인 교섭이 무위로 돌아가고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를 다시 거쳤다. 조합원 수가 더 많은 기업노조가 교섭대표노조가 되는 어이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단수노조는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를 거쳤다고 하더라도 교섭대표노조가 될 수 없다는 최근 대법원 판례(대법원 2017. 10. 31. 선고 2016두36956 판결)를 사용자가 악용했다. 복수노조 상황에서 과반수 노조가 사실상 교섭권을 독점하는 교섭창구단일화제도 자체의 문제점이 부른 결과였다.

노동존중 사회를 열겠다는 뜻을 밝힌 문재인 정부는 문제가 많고, 구체 사례가 드러난 노동법과 제도를 노동 중심으로 개혁하기에 소극적이거나 관심이 별로 없어 보인다. 최저임금을 올려놓고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바꾸려 한다. 휴일근로 중복할증을 인정하는 하급심 판결들이 주류를 이루고, 법리상 분명함에도 이를 인정하기보다 범위를 줄이려는 편법으로 일관한다. 노동개혁에 역행하고 있다.

▲ 노동자는 개별이 아닌 집단으로 단결하고 교섭하고 행동해야 노동조건을 향상하고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을 수 있다. 노동자가 노동 3권을 실질로 보장받도록 교섭창구 단일화 폐지와 부당노동행위 형량 대폭 상향 등 노동 헌법과 노조법 개정을 다시 한번 촉구한다. <금속노동자> 자료사진

특히 10%대에 불과한 노동조합 조직률을 올리고, 노동 3권을 실질 보장을 위해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하 ‘노조법’) 개정이 시급하다. 문재인 정부는 기초 논의조차 시작하지 않고, 사회 쟁점이 되지 않고 있어 답답하다.

노동존중 사회는 개별 노동자의 노동조건 향상만으로 한계가 분명하다. 노조법 같은 집단 노동관계 법 제도 개정을 반드시 함께해야 한다. 사용자가 우위에 있기 마련인 노사관계에서 힘의 균형을 이루고, 노동자의 경제․사회 지위 향상을 이루기 위해 노동자의 집단 단결을 법·제도로 보장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국제노동조합총연맹(ICTU)이 발표하는 국제노동권리지수(Global Rights Index)에서 3년 이상 최하위 등급에 머물고 있다. 집단 노사관계 관련 법 제도가 다른 나라에 비교해 뒤떨어진 영향이 크다.

진정한 노동존중 사회 실현을 위해 시급하게 개정해야 할 집단 노동관계법 제도는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의 폐지다.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는 교섭대표노조에 배타 교섭권을 인정하지만, 세부 절차를 촘촘히 규정하고 있지 못하다. 현행 제도는 사용자의 악용 가능성이 매우 크다. 친 사용자 노조 설립과 교섭대표노조 지위 확보를 위한 불법행위를 판치고 있다. 비교법 측면에서 볼 때, 한국처럼 법 제도로 소수노조의 교섭권을 박탈하는 사례는 다른 나라에서 찾기 힘들다.

모든 노동조합의 존립 이유인 단체교섭권을 실질로 보장하기 위해 현행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를 폐지하고, 모든 노동조합이 교섭권을 확보하는 개별교섭 원칙을 바탕으로 노조법을 개정해야 한다.

한국 법원은 단체교섭 대상과 쟁의행위 목적과 관련해 경영권을 추종하는 판결을 다수 내리고 있다. ‘정리해고나 구조조정(부서, 조직의 통폐합 등)의 실시 여부는 경영 주체에 의한 고도의 경영상 결단에 속하는 사항으로 이는 원칙적으로 단체교섭의 대상이 될 수 없다’라는 식의 판례(대법원 2003. 12. 26. 선고 2001도3380판결 등 다수)다.

더는 이런 판결이 노동자의 권리를 빼앗지 못하도록 헌법 33조 1항의 ‘근로조건 향상을 위하여’라는 표현을 삭제해야 한다. 헌법 조항에 경제·사회 지위 향상이라는 표현을 추가하고, 관련 노조법 조항을 이에 맞춰 바꿔야 한다.

‘진짜 사장이 나오라’라는 투쟁을 오랫동안 벌이고 있는 하청노동자와 불법파견 노동자의 교섭권을 실제로 보장하기 위해 단체교섭의무를 지는 사용자를 ‘노동자의 기본적인 노동조건 등에 관하여 그 근로자를 고용한 사업주로서 권한과 책임을 일정 부분 담당하고 있다고 볼 정도로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원청사업주)’(대법원 2010.03.25.선고 2007두8881판결 등)까지 확대하는 방향으로 노조법 2조 2호 사용자 개념을 개정해야 한다.

노동조합 조직률이 낮아서 노동자를 대변하는 노동회의소 같은 새로운 단체가 필요하다는 논의를 하기 전에 왜 노동조합 조직률이 낮고, 비정규직 노동자를 비롯한 대다수 노동자가 왜 노동조합 설립을 주저하는지 고민해봐야 한다.

노동자는 불이익을 받거나 해고 당할까 봐 노동조합에 가입하거나 세우기를 꺼린다. 노동존중 사회는 노동조합 설립과 가입을 방해하고, 이를 이유로 불이익을 주는 부당노동행위 범죄를 엄벌하고 형량을 대폭 상향하는 노조법 개정에서 시작해야 한다.

악질 노무법인이 작성한 노조파괴 시나리오대로 노동조합을 파괴하고 조합원들 인생을 파탄에 내몬 악덕 부당노동행위 사업주가 재정신청까지 거쳐 벌인 재판에서 수년 만에 고작 벌금 몇 푼에 면죄부를 받는 상황을 바꾸기 위해 현행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인 부당노동행위 형량을 대폭 올려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고 노동존중 사회를 만들겠다고 선포한 영향인지 몰라도 최근 신규 금속노조 지회를 설립해 자주적인 노동조합 활동을 시작하면서 희망을 꿈꾸는 노동자가 많이 늘고 있다.

금속노조가 노동자의 희망이 한낱 장밋빛 꿈에 머물지 않도록 집단 노동기본권을 실제로 보장받는 방향으로 노동 헌법과 노조법 개정을 선봉에서 요구하면서 투쟁하기를 바란다. 문재인 정부는 노무현 정부 당시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수많은 노동자를 구속한 오류를 더 범하지 않고 진정으로 노동존중 사회를 만들고 싶다면, 지금이라도 개별노동법 개정․개악에서 벗어나 노동 3권을 실질로 보장하도록 노조법 등 집단 노동관계법을 바꿔야 한다.

노동자는 개별이 아닌 집단으로 단결하고 교섭하고 행동해야 노동조건을 향상하고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을 수 있다. 노동자가 노동 3권을 실질로 보장받도록 교섭창구 단일화 폐지와 부당노동행위 형량 대폭 상향 등 노동 헌법과 노조법 개정을 다시 한번 촉구한다.

이서용진 _ 금속법률원 노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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