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후진국 한국

국제노총(ITUC)은 매년 노동자 권리 보호 지표를 발표한다. 한국은 매년 바닥을 기고 있다. 2017년 6월 발표 결과는 2016년의 상황을 기초로 한 것인데 한국은 5등급이다. 특히 최악의 10개국 안에 꼽히는 영광까지 얻었다. 5등급 밑에 5+ 등급이 있기는 하지만, 이는 내전이나 군부독재 등으로 법치주의 자체가 작동하지 않는 국가들을 의미한다. 5등급과 5+등급은 노동자 권리 보호 수준에서 아무 차이가 없다.

2017년 국제노총이 조사한 139개국 중 최하 등급인 5등급과 5+등급에 속하는 국가는 모두 46개국(5등급이 35, 5+등급이 11)이다. 5등급 국가는 한국, 알제리, 캄보디아, 파키스탄, 짐바브웨, 나이지리아 등이다. 5+등급 국가는 이라크, 시리아, 소말리아, 수단 등이다. 한국이 최하 등급을 받은 이유는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 구속 ▲2016년 삼성의 노조파괴 시도(노조파괴 문건) ▲2016년 화물연대 파업, 철도노조 파업 탄압 등이 언급되고 있다.

 

국제표준 ILO 협약의 체계

이처럼 한국이 노동권, 특히 단결권 등 노동 3권 측면에서 국제표준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ILO 협약 비준율이 매우 떨어지는 문제가 크다. 국제 노동기준은 협약, 권고, 협약을 보충하는 의정서 등으로 구성하고 있다. 2017년 현재 ILO는 총 189개 협약과 204개의 권고를 확립하고 있다. 이 중 여덟 개(4대 원칙, 8개 협약)협약을 ‘ILO 핵심 협약’이라고 한다. ILO 핵심 협약은 결사의 자유(87, 98호 협약), 강제노동 철폐(29, 105호 협약), 아동 노동 철폐(138, 182호 협약), 차별 철폐(100, 111호 협약) 등이자. 이중 한국은 결사의 자유에 관한 두 개 협약과 강제 노동 철폐에 관한 두 개 협약을 비준하지 않은 상태다.

▲ 최종진 민주노총 위원장 직무대행이 지난 5월30일 ‘샤란 바로우 국제노총 사무총장 방한 기자회견’에서 문재인 정부는 과감한 노동개혁 조치와 더불어 조속한 ILO 핵심 협약 비준을 위한 이행계획서를 내놔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사진=신동준

 

결사의 자유 협약 비준의 필요성

위 핵심 협약 중 결사의 자유 협약(87호, 98호)이 특히 중요하다. 2017년 노동자 권리 보호 지표 최악 10개국 선정 원인으로 지목된 화물연대와 철도노조 파업 탄압, 2016년 5등급 원인으로 지목된 타워크레인 노조 문제 등은 모두 노동 3권을 제대로 보장하지 않아서 발생했다. 결사의 자유 협약을 비준했으면 발생하지 않았거나 양상이 달라졌을 것이다.

이런 양상은 금속노조에서도 벌어졌다. 2010년 이래 금속노조 각 사업장을 휩쓸고 있는 노조 전임자 타임오프 문제에 관해 ILO는 ‘노조 전임자 급여 지급은 노사 자율 교섭 사항이다. 입법으로 이를 금지하는 것은 부당하고 폐지해야 한다’라고 밝히고 있다.

단체협약 시정명령에 대해 ILO는 ‘당사자가 자유롭게 체결한 단체협약을 당사자의 동의 없이 법령으로 정지하거나 바로잡는 것은 자유와 자율교섭의 원칙을 위반한다. 만약 정부가 단체협약 조항이 국내 경제정책에 부합하기를 원하면 당사자에게 강제하지 않고 당사자가 이를 자발적으로 고려하도록 설득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단체협약 내용의 위법성 여부는 행정부나 입법부가 정할 사항이 아니라고 했다.

특히 ILO 결사의 자유 협약이 보장하는 권리에 파업권이 포함된다는 것이 현재까지 확립한 해석이다. 최근 ILO 사용자 그룹에서 이 해석에 도전하고 있다. 한국은 주요 방위산업체 노동자의 쟁의행위를 과도하게 제한하고 있어 결사의 자유 협약 위반 소지가 있다. 쟁의행위의 목적과 관련해 ILO는 경제적 정치파업은 적법하며, 원래의 쟁의행위가 적법하다면 동정파업도 가능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국은 이 점에서도 역시 결사의 자유 협약 위반 소지가 있다.

ILO는 한국정부에 평화 파업을 업무방해죄 등으로 처벌하는 법집행 자체에 대해 수차례 개선 권고를 하고 있다. 2011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 따라 업무방해죄 적용이 제한됐다 하더라도 파업권을 행사하는 노동자들이 형사기소, 체포, 구속의 위험에 노출된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ILO는 “장기간의 사법절차 끝에 법원이 형법 314조(1)를 좁게 해석해 무죄 선고를 받더라도 기소와 재판, 체포와 구금의 과정을 거친다는 사실 자체가 해당 노동자의 결사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하는 것이다”라면서 평화 파업을 처벌하지 말라는 권고 의견을 밝히고 있다. 이 외에 주로 공공운수노조에서 문제가 많이 되는 쟁점이고 금속노조에서도 문제가 되는 소위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동권 문제와 전교조와 공무원노조의 단결권도 결사의 자유 협약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올해 ILO 결사의 자유 위원회는 ▲해고자의 노조가입을 금지하는 조항, 특히 교원노조법과 공무원노조법의 개정과 폐지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 조항 폐지 ▲정당 후원, 사회 경제 정책에 대한 의사 표현을 이유로 교사․공무원 징계 금지․노동조건 향상과 단체교섭의 대상이 되는 사항만 파업의 정당한 목적으로 보는 법 조항 폐지, 사회․경제 문제에 대한 파업을 정당한 파업으로 인정할 것 ▲업무방해죄 적용을 결사의 자유 원칙에 맞게 개선할 것 ▲파업 참가자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는 결사의 자유 원칙을 침해하는 법 제도라는 점 등을 골자로 하는 보고서를 채택했다. ILO 결사의 자유 위원회는 한국 정부에 위 사항들의 이행을 권고했는데, 금속노조와 밀접하게 연관된 사항들이다.

 

ILO 협약 전면 비준 운동을 통해 노동권의 범위를 확장해야

결사의 자유 협약을 비준하지 않았더라도 ILO 회원국이면 1998년 선언에 따라 이를 준수할 국제법 의무가 있고, 결사의 자유 위원회(CFA)의 감시․감독의 대상이 된다. 한국 사법부는 결사의 자유 협약이라고 하더라도 비준하지 않은 협약의 국내법 효력을 전혀 인정하지 않고 있다(헌법재판소 2006헌마518 결정). 비준이 더욱 필요한 상황이다.

문재인 정부는 공약 사항으로 위 네 개의 핵심 협약을 비준하겠다고 밝혔다. ILO는 2019년 ILO 100주년을 맞아 핵심 협약 비준율을 높이기 위해 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금이 핵심 협약을 비준할 절호의 기회다. 현재 민주노총은 ILO 핵심 협약 비준을 주요한 사업으로 잡고 있다. 금속노조 조합원들도 ILO 핵심 협약 비준 운동에 동참해 노동권의 범위를 확장해야 한다.

김태욱 금속법률원 변호사

저작권자 © 금속노동자 ilabo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