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7월 1일 복수노조와 교섭창구 단일화 강제제도가 도입되고 6년이 흘렀다.

자본은 복수노조 제도를 악용해 소수노조의 노동권을 박탈했다. 복수노조 시행 후 금속노조 50개 사업장에서 복수노조가 설립됐고 대부분 민주노조를 깨기 위한 수단으로 만든 기업노조다. 35개 사업장이 소수노조 지위로 내몰렸고 교섭권과 쟁의권 없다. 손발이 묶인 소수노조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고사하고 있다.

복수노조를 악용한 민주노조 파괴와 교섭창구단일화 제도를 악용한 노동권 박탈 실태를 사례를 통해 알아보고 대안을 살펴본다.

 

① 금속노조 복수노조 사업장 현황과 문제점

② 교섭창구단일화 제도 악용 부당노동행위 사례 ① - 보쉬전장지회

③ 교섭창구단일화 제도 악용 부당노동행위 사례 ② - 콘티넨탈지회

④ 교섭창구단일화 제도 악용 부당노동행위 사례 ③ - 한국타이어지회

⑤ 부당노동행위 처벌 강화와 노조파괴금지법 제정

⑥ 교섭창구단일화제도 폐지와 산별교섭 법제화 방안

 

2017년 8월 현재 금속노조 내 복수노조 사업장은 모두 63곳이다. 금속노조에 약 270여 개 지회・분회가 존재하고 있으니 어림잡아 다섯 개 중 하나꼴로 복수노조 사업장인 셈이다. 이 중에서 2011년 7월 복수노조제도 시행 이후 기업노조가 설립된 곳은 모두 50개며, 그 가운데 금속노조는 35개 사업장에서 소수노조로 있다. 63개 복수노조 사업장 전체를 놓고 보더라도 43개 사업장이 일체의 교섭권을 갖지 못한 채 소수노조로서 어렵게 노조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2001년 금속산별노조 출범 이후 새로 조직된 전체 지회・분회를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에 따르면, 노조설립 이후 조합원 수가 감소한 가장 큰 원인은 바로 ‘복수노조 설립과 조합원의 이탈’(32.8%)이었다. 2011년 7월 이후 새롭게 노조가 조직된 신생 사업장의 3분의 2에서 노조설립 후 짧게 한 달, 길게 일 년 안에 회사 측 입장을 따르는 기업노조가 설립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대부분 신생지회는 기업노조 설립 후 소수노조로 전락했다. 이 사실은 복수노조제도가 기존 금속노조를 분열시켰을 뿐 아니라 금속노조의 미조직사업과 조직확대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뜻한다.

 

사업장단위 복수노조 허용은 오랜 기간 민주노조운동의 요구였다. 노동자가 자주적으로 단결해 노동조합을 만들 수 있는 권리는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 3권의 핵심이라 할 수 있고, 단일노조체제 아래서 민주노조운동이 삼성, 포스코 등 반노조, 무노조 전략을 고수한 한국의 재벌・대기업에 개입하기 어려웠던 까닭이다. 2011년 7월부터 시행한 복수노조제도는 단체교섭에 관한 선택권을 오로지 사용자에게 부여하는 교섭창구단일화를 허용함으로써 사용자에게 민주노조를 탄압하는 새로운 도구를 제공했다. 현행 복수노조제도의 ‘건강한 조직경쟁의 장’이란 취지는 결코 실현하지 못할 허울이다. 금속노조 안에서 회사의 대대적인 지원과 노무컨설팅업체의 기획에 힘입어 수십여 개의 기업노조가 출현했던 과정을 돌이켜보면, 복수노조를 둘러싼 제도의 현실이 헌법의 취지를 짓밟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현행 복수노조제도는 어떤 문제점을 안고 있을까. 실제 작업장에서 복수노조는 어떻게 민주노조를 탄압하는 수단으로 기능하고 있을까. 첫 번째로 지적할 문제는 ‘교섭권 박탈’이다. 현행 노조법 체계는 사업장 안에 두 개 이상 노조가 존재할 때 개별교섭-창구단일화 여부를 결정하는 권한이 사용자에게 있다. 창구단일화를 개시할 경우 오로지 과반노조만이 교섭대표노조의 지위를 갖는다. 금속노조가 소수노조가 되면 사용자의 개별교섭 기피와 교섭창구단일화로 인해 교섭권을 원천봉쇄 당하는 상황에 놓인다. 물론 교섭권이 기업노조에 있더라도 교섭대표노조는 창구단일화에 참여한 다른 소수노조 조합원들까지 공정하게 대표해야 한다(공정대표의무). 그러나 지금껏 소수노조인 금속노조 의견이 제대로 반영된 사례는 없다. 교섭대표권을 가진 기업노조들은 조합원 투표를 거치지 않은 채 직권조인으로 단체협약을 체결하거나, 처음부터 금속노조 조합원을 철저히 배제한 채 투표를 진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두 번째 문제는 ‘개별교섭을 통한 노조 간 차별’이다. 금속노조가 다수노조라고 해도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사용자가 교섭창구단일화를 거부하고 각각의 노조와 개별교섭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수노조인 금속노조보다 소수노조인 기업노조가 더 유리한 조건으로 단체협약을 맺는 사례들을 볼 수 있다. 금속노조가 소수노조일 경우 사용자가 개별교섭을 택하되 기업노조보다 훨씬 더 낮은 조건의 제시안을 종용하는 사례도 존재한다. 노조 간에 불합리한 차별이나 금속노조의 노동조건 하락을 일으키는 점에서 개별교섭의 문제점이 적지 않다. 이보다 큰 문제는 차별하는 방식의 개별교섭이 금속노조 조합원들에게 모멸감과 패배감을 안겨줌으로써 노조 내부를 교란할 수 있다는 점이다.

세 번째 문제는 ‘교섭과 무관한 조합원 차별’이다. 집단 노사관계가 작용하는 교섭이나 교섭창구단일화와 별개로 회사가 권한을 가진 영역에서 다양한 차별과 작업장 통제가 발생한다. 이 현상은 복수노조 상황으로 인해 회사에 대한 금속노조의 견제력이 약화하면서 나타난 결과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기업노조 조합원들에게 잔업, 특근 몰아주기다. 이 경우 금속노조 조합원들은 업무배분이라는 간접 방식으로 임금 차별을 받는다. 승진이나 인사고과에서 금속노조 조합원들에게 불이익을 주는 사례도 자주 볼 수 있다. 사측이 금속노조의 영향력을 줄이기 위해 전환배치로 조합원을 여러 곳으로 쪼개는 수법도 즐겨 쓰는 탄압 수단이다.

네 번째 문제는 ‘노조활동 위축’과 ‘작업장 전반의 노동조건 후퇴’다. 복수노조 설립 후 회사가 가장 먼저 시도하는 탄압은 단체협약의 채무 부분(전임자, 업무 중 조합활동, 조합원 총회․교육시간, 회사 시설이용 등) 후퇴시키기다. 기존 금속노조가 갖고 있던 권한을 최대한 축소한다. 회사는 기업노조에 힘을 실어줘야 하는 까닭에 임금, 기타 규범 부분을 직접 후퇴시키지는 않는다. 복수노조 초기에 기업노조로 넘어갔더라도 곧바로 노동조건 하락을 경험하지 않는다. 문제는 이것이 천천히, 눈에 띄지 않는 방식으로 진행된다는 점이다. 대표로 활용되는 방법이 물량 외주화다. 회사는 해고, 징계, 임금삭감 등 금속노조의 투쟁강도를 강화할 여지가 있는 직접적인 고용관계 탄압보다 외주화, 물량변동 등으로 비용을 절감하고 조합원들을 길들인다. 이 방법은 당장은 체감할 수 없지만, 장기로 회사가 고용과 임금유연화를 달성하는 데 크게 기여한다.

 

현행 복수노조제도는 민주노조운동을 무너뜨리는 힘을 갖고 있다. 금속노조 안 복수노조 사업장 대부분이 이 같은 문제를 겪으며 어렵게 노조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태생적으로 소수노조의 단체교섭권, 이에 따른 단체행동권을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는 현행 복수노조-교섭창구단일화제도 자체를 근본부터 뜯어고쳐야 한다. 물론 기업노조-복수노조가 생기는 원인이 자본의 악랄함에만 있지 않다. 금속노조의 취약한 현장조직력과 현장분열이 복수노조 설립의 주요한 배경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2013년 복수노조 사업장 설문조사 결과, 다섯 명 중 한 명은 ‘취약한 현장조직력, 노노 갈등과 분열’이 복수노조 설립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지난 6년 동안 사례를 분석하면, 금속노조 안에 있는 복수노조-기업노조 절대다수는 작업장 안에서 민주노조를 말살시키고자 하는 회사의 의도와 뒷받침하는 법 제도로 인해 출현하고 존속했음이 명백하다. 현재 복수노조-교섭창구단일화제도를 어떤 식으로든 바꾸지 않으면 민주노조운동의 생존을 위협하는 노조파괴는 끊임없이 벌어질 것이다.

시급한 해법은 폭력 방식의 교섭창구단일화제도 폐기이다. 단체교섭권을 중심으로 운용하는 한국 노조법 체제에서 소수노조의 교섭권을 무력화하는 교섭창구단일화제도는 사실상 소수노조의 노조활동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것과 같다. 다른 해법으로 교섭대표노조 구성방식을 바꾸는 방법도 고민할 수 있다. 현재 과반노조에게 교섭대표노조 지위를 주고 있으나 창구단일화에 참여하는 모든 노조가 공동으로 교섭대표단을 꾸리는 방법도 생각해야 한다. 더불어 교섭대표노조와 사용자의 공정대표 의무 범위를 명시하고, 공정대표 의무 위반에 관한 처벌을 강화하는 방안도 필요하다. 공정대표 의무제도는 소수노조가 불합리한 교섭창구단일화 과정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법 논리다. 그러나 현장의 어떤 사용자나 기업노조도 공정대표 의무 위반을 두려워하지 않고 있다.

직장폐쇄 요건을 강화하고 노조파괴를 목적으로 자행하는 공격, 선제 직장폐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며, 노조파괴에 개입한 컨설팅업체나 노무사를 퇴출하는 방안인 일명 노조파괴 금지법을 반드시 마련해야 한다. 복수노조제도는 그 자체로 존재하지 않으며, 현장에서 회사의 지원에 힘입은 기업노조 설립, 공격 직장폐쇄와 조합원 선별복귀, 기업노조의 과반노조 확보와 교섭창구단일화, 기존 단체협약 개악 등이 하나의 ‘노조파괴 패키지’로 실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행 복수노조제도는 노노관계가 아니라 노사관계를 규율하는 제도임이 분명하다. 복수노조제도 개선을 노조파괴와 관련한 법 제도 개선방안과 함께 논의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홍석범 금속노조 노동연구원 연구원

저작권자 © 금속노동자 ilabo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