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가을부터 올해 봄까지, 광장을 메웠던 촛불 시민들이 국정농단에 대한 책임을 물은 대상은 부패한 청와대와 주변의 정치·경제 권력만이 아니었다. 이명박 정권부터 박근혜 정권까지 무려 9년의 시간을 충실하게 정권에 복무한 언론을 시민들은 국정농단의 공범으로 꼽았다.

그리고 5월, 시민들은 정권을 교체했고 국정농단의 중심 인물들은 현재 재판을 받고 있다. 치를 죗값이 없다고 주장하며 침묵하거나 부패 대신 무능을 선택하거나, 재판에 임하는 전략은 각기 다르지만 국정농단 세력으로 지목된 이들은 어쨌든 심판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언론은 지금, 심판을 기다리는 자리에 있지 않다. 공영방송의 잃어버린 9년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영화 <공범자들>을 연출한 최승호 MBC 해직 PD(현 <뉴스타파> PD)가 영화의 첫 장면에서 전직 MBC 간부의 출판기념회에서 만찬을 즐기는 ‘공범자들’의 모습을 보며 뱉은 자조 섞인 말마따나 그들은 여전히 “잘들 살고” 있다.

▲ 김연국 전국언론노동조합 문화방송(MBC)본부 위원장(앞줄 왼쪽 둘째부터)과 권혁용 문화방송 영상기자회장 등이 9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 영상기자들의 개별 성향과 회사에 대한 충성도 등을 평가해 분류한 '카메라기자 성향분석표' 등과 관련해 문화방송 법인과 김장겸 사장(전 보도국장), 박용찬 논설위원실장(전 보도 부국장) 등을 부당 노동행위 혐의 등으로 검찰에 고소하러 들어가고 있다. 이들은 이날 정오부터 제작거부에 들어갔다. <한겨레>

모두가 “잘들 살고” 있는 건 아니다. ‘잃어버린’ 시간 동안 동토(凍土)로 변한 언론을 이제는 살려야 한다고 외치는 언론인들이 있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와 국정농단 사태에서 입을 닫고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린 언론의 ‘기레기’ 짓을 기억하는 촛불 시민들은 묻는다. 이제 싸울 만하니 촛불 혁명에 무임승차 하려는 게 아니냐고. 그리고 요구한다. 너희들끼리 잘 싸워 보라고, 정말 모든 걸 걸고 투쟁한다면 그때 가서 도울지 말지를 결정하겠다고 말이다.

<공범자들>은 언론 중에서도 KBS와 MBC, 국민의 자산인 두 공영방송이 어떻게 언론에서 기레기 집단으로 몰락했는지 10년의 과정을 담아내고 있다. ‘점령-반격-기레기’로 나뉜 세 개의 장을 통해 청와대와 방송통신위원회, 감사원, 검찰 등이 어떻게 공영방송 사장을 축출하고 친(親)정부 사장들을 세웠는지, 정부 비판 보도와 프로그램을 만들고 낙하산 사장에 항의한 언론인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제작 일선에서 배제되고 회사 밖으로 쫓겨났는지 등을 보여준다. 그렇게 권력이 공영방송을 장악해가는 모든 과정의 결과로 거대한 기레기 집단이 만들어졌다.

감독은 몰락한 공영방송의 현실 안에서 싸워왔고, 여전히 싸우고 있는 언론인들의 모습도 함께 보여 준다. 아이러니하게도 언론 내부의 ‘공범자들’은 권력으로부터 공영방송의 독립을 지키기 위해 마련한 장치인 ‘임기제’ 덕분에 여전히 “잘들 살고” 있다. 김민식 MBC PD가 어느 날 점심 무렵 페이스북 라이브를 켜고 “물러나라” 구호를 외친 건, 그들이 여전히 “잘들 살고” 있는, 그리하여 싸울 만한 수단이 거의 남지 않은 현실에서 그렇게라도 해야 했기 때문이다.

영화는 이 지점에서 언론을 살려야 한다고 외치는 언론인들을 향한 냉랭한 시선들에 답을 한다. 더 이상 어떻게 싸워야 할지 알 수 없는, 답답한 현실에서 한 언론인이 울분을 터트리듯 외친 “물러나라”는 구호에 응답하는 목소리들이 이어졌다. 누군가는 지금 언론을 장악했다고 믿을 지도 모른다. 또 누군가는 이미 언론은 완전히 장악 당해 손 쓸 수 없는 상태라고 회의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언론을 영원히 장악할 수 있는 권력이란 없다고, 지난 9년 동안 차츰차츰 장악 당한 언론의 현실을 해직으로 견뎌낸 언론인은 말하고 있다.

영화 중간, 이 모든 상황의 시작이었던 이명박 전 대통령을 찾아간 최승호 PD는 묻는다. 언론을 망가뜨린 주범이란 걸 인정 하냐고. 이 전 대통령은 제대로 답하지 않고 차에 오르고, 경호원들은 최 PD의 질문을 막는다. 그 순간 최승호 PD는 외치듯 말한다. “언론이 질문 못하게 하면 나라가 망해요!”

영화 내내 최승호 PD는 ‘공범자들’을 찾아 언론 장악의 책임을 인정하는지 묻는다. 하지만 아무도 그 질문에 답하지 않았고, 그렇기에 영화의 결말은 완성되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 아직 언론인의 영혼까지 장악당하지 않은 언론노동자들은 마지막 질문을, 싸움을 준비하고 있다. 언론은 결코 장악될 수 없다는 영화의 엔딩을 위해 필요한 건 시민들의 관심과 응원이다.

김세옥 미디어관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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