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윙, 윙.” 휴대전화가 울린다. 재난문자다. 폭염주의보가 발령됐다. 이글이글 타며 서쪽으로 떨어지는 해가 천막 안쪽 그늘을 조금씩 차지하며 들어온다. 해를 피해 안쪽으로 한 뼘씩 옮겨보지만 더는 공간이 없다. 장마 습기를 머금은 아스팔트 지열에 숨이 막힌다. 얼굴과 등, 배를 타고 흐른 땀이 옷을 적신다.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은 부채질로 식지 않는다.

자신의 꿈과 노동을 저당 잡히고 노예처럼 일하던 청춘들이 작업장을 박차고 나와 불볕더위 아래 농성천막을 쳤다. 금속노조 인천지부 만도헬라비정규직지회는 지난 2월 금속노조에 가입하고 임금․단체협약 체결을 위한 교섭에 들어갔지만 돌아온 건 원청 만도헬라의 불법파견 위장도급 업체 계약해지와 원청사의 매몰찬 문전박대였다.

“작년에 휴가를 단 하루도 못 썼어요. 평일은 밤 9시까지 일했고요. 토요일, 일요일 특근은 기본이라 특근 빼는 건 상상도 못 해요. 연월차도 눈치 보여 한 번도 못 썼어요. 여름휴가 동안에도 바쁘다고 해서 비상근무를 했어요. 그래도 휴가 때는 9시까지 일 안 하고 정상근무 시켜준다니 회사가 배려해주는구나 싶어 고마웠어요.”

박정설 조합원은 열심히 일했다. 휴가 한 번 못 쓰고 만도헬라를 위해 일했다. 현실은 만도헬라와 상관없는 불법파견 위장도급 업체의 비정규직 노동자였다. 박정설 조합원은 평택에 있는 플라스틱 사출업체에서 2년 9개월 정도 일한 경험이 있다. “인격 모욕을 너무 많이 당했어요. 선배 관리자들이 일을 못 한다고 멍키 스패너로 머리를 찍고 욕을 했어요.”

▲ 장마 습기를 머금은 아스팔트 지열에 숨이 막힌다. 얼굴과 등, 배를 타고 흐른 땀이 옷을 적신다.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은 부채질로 식지 않는다. 자신의 꿈과 노동을 저당 잡히고 노예처럼 일하던 청춘들이 작업장을 박차고 나와 불볕더위 아래 농성천막을 쳤다. 인천=신동준

다른 회사를 알아보던 박정설 조합원은 인천 만도헬라 모집 공고를 보고 눈을 번쩍 떴다. 인천 최고의 급여와 복지, 깨끗한 시설을 갖춘 외국계 회사라는 광고를 보고 입사하면 대박이라고 생각했다.

만도헬라에 관해 알아보니 정규직 근무조건은 실제 그렇다고 들었다. 막상 송도 공장에 와보니 자신은 도급업체가 뽑은 비정규직이었다. 비정규직이지만 원청에서 직접 고용한 것으로 알았다. 만도헬라 로고를 새긴 작업복과 명찰을 달고 만도헬라의 업무지시를 받고 일했기 때문이다.

원청이 시키는 대로 열심히 일했다. 회사가 잘되면 나도 잘 될 수 있다고 믿었다. 금속노조에 가입하고 부당한 처우를 개선하고 일한 만큼 정당한 몫을 달라고 요구하니 원청과 도급업체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박정설 조합원의 처지를 일깨워 줬다. 회사가 잘될수록 저비용 일회용품 신세이고, 죽도록 뽑아먹다 단칼에 버리는 불법파견 노동자 신분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원·하청 짜고 치는 고스톱, 노동 3권 무용지물

만도헬라비정규직지회는 5월 31일부터 일방 인사발령 철회, 협의 없는 교대제 시행 중단, 임금․단체협약 체결을 요구하며 파업에 들어갔다. 지회는 쟁의발생 신고를 내고 파업찬반투표를 거쳐 정당한 합법 절차로 파업을 벌이고 있지만 만도헬라 원청과 불법 위장도급 업체는 도급계약 해지와 직장폐쇄로 파업을 무력화하고 있다.

지회는 쟁의 기간 태업과 파상파업을 병행하며 교섭을 이어왔다. 만도헬라는 단기계약직을 채용해 대체 생산에 투입하고, 지회 간부들을 징계하겠다고 협박했다. 조합원들에게 사유서를 강요하고 태업으로 생산량이 줄었다며 제멋대로 임금을 깎았다.

만도헬라는 7월 9일 조합원들이 소속한 불법 도급업체 SC(서울커뮤니케이션)과 쉘코아의 도급 계약을 해지했다며 ‘하청 소속 근로자의 당사 출입을 금지하며 이를 위반할 경우 법적 조치를 할 예정’이라는 ‘무단 침입 금지 공고문’을 공장에 붙였다.

불법파견 위장도급업체인 SC와 쉘코아는 이에 발맞춰 조합원들에게 “도급 계약이 해지됨에 따라 7월 10일부터 5일 동안 휴업에 들어가며 휴업 기간에 당사자와 근로관계는 유지되나 사업장 출입은 금지된다. 이를 위반하면 형사처벌 받을 수 있다”라는 협박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지회는 물러설 수 없었다. 지회는 조합원 전면파업을 선언하고 7월 15일 공장 앞에서 모든 조합원이 노숙농성에 돌입했다. 위장도급업체들은 7월 17일 직장폐쇄로 응수했다.

▲ 만도헬라는 7월 9일 조합원들이 소속한 불법 도급업체 SC(서울커뮤니케이션)과 쉘코아의 도급 계약을 해지했다며 ‘하청 소속 근로자의 당사 출입을 금지하며 이를 위반할 경우 법적 조치를 할 예정’이라는 ‘무단 침입 금지 공고문’을 공장에 붙였다. 인천=신동준

원청과 불법파견 하청의 도급계약 해지와 직장폐쇄는 합법 쟁의행위에 돌입한 조합원들을 완전히 고사시키려는 ‘짜고 치는 고스톱’인 셈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헌법상 노동 3권이 얼마나 무용지물인지 보여주는 상황이다.

도급계약 해지가 노조가입 때문이라는 사실과 대체인력 투입이 파업 무력화를 위한 부당노동행위임이 명백함에도 중부고용노동청은 특별근로감독을 미루고 있다. 그 사이 자본은 불법과 탈법, 합법의 경계에서 줄타기하며 법망을 피해가고 있다.

 

“포기? 만도헬라가 바라는 거다”

오후 다섯 시, 푹푹 찌는 열기로 체온조차 뜨겁게 느껴진다. 파업 농성천막 안은 발 디딜 틈 없이 만원이다. 대여섯 동 천막에 모여 앉은 조합원 100여 명은 연신 부채질을 하고 휴대용 선풍기를 얼굴에 대 보지만 더위는 조금도 가시지 않는다. 전기를 쓸 수 없어 선풍기를 돌리지 못한다. 불볕더위에 몸은 축축 늘어진다.

지회 쟁의대책위원회 간부 신호에 조합원들은 공장 정문 앞에 나란히 섰다. 축 늘어졌던 몸에 금세 생기가 돈다. 퇴근 투쟁을 알리는 구호를 외친다. 카랑카랑한 구호 소리가 개미 한 마리 지나가지 않는 공장 블록을 감싼다.

지회 조합원 대부분이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이다. 이 청년들이 떼돈을 달라는 것도 아니고, 불법을 저지르지 않았다. 만도헬라가 부당하게 시키는 대로 일하기를 거부하며, 대한민국 법률이 보장하는 상식의 요구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가마솥더위에 거리로 내몰렸다.

“날 더운 건 참을 수 있어요. 인생 목표를 세우고 가야 하는데 지금은 앞이 보이지 않아 갑갑해요. 교섭하면 기대를 하게 되죠. 이번에 되겠지, 이번엔 되겠지. 도급업체는 교섭 때마다 우리를 데리고 장난을 쳐요. 희망 고문이죠.”

원청과 불법 도급업체의 태도에 화가 치미는 입사 3년 차 신재홍 조합원 말이다. 파업이 길어질수록 조합원들이 견뎌야 할 고통이 커진다. 맨주먹 청춘이니 월세부터 살림을 시작하는 사람이 많다. 불법 직장폐쇄로 급여가 막혀 당장 월세 낼 돈이 없다. 핸드폰 요금을 내지 못한 조합원이 늘고 있다. 대출금 이자를 연체하고, 통장 잔액은 바닥이다.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으로 그달 벌어 그달 쓰는 비정규직 청년 노동자들에게 한두 달 버틸 여력조차 부족해 보인다.

“결혼을 일찍 해 지금 아이가 셋이에요. 막내가 어려서 아내가 아직 일을 못 해 혼자 벌어야 해요. 아이 셋 먹고 입히며 당장 살아야 하니 낮에 농성장에 결합하고, 밤에 아르바이트해요.”

서완중 조합원 눈가에 눈물이 맺힌다. 앞이 막막하지만 투쟁을 포기할 수 없다. 부조리함에 굴종할 수 없고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불의와 부정에 타협할 수 없다. 양심과 정의감이 먼저인 청년이기 때문이다.

“포기는 원청과 업체들이 바라는 거잖아요. 돈으로 목줄 죄면 포기할 거로 생각해요. 만도헬라의 계획대로 두 손 들고 들어갈 수 없어요. 그렇게 들어가면 끝이잖아요. 평생을 노예처럼 비굴하게 살아야 하고 만도헬라에 노동조합을 다시 세우지 못할 거예요.” 청년 서완중은 이을 악문다. 서러움과 두려움의 크기만큼 오기가 커진다.

 

“잘못됐으면 싸워서 바로 잡아야 해요”

“사내하청은 말이 협력사지 노예 양성소라고 생각해요. 불만이 있어도 ‘회사가 잘되면 우리가 잘되겠지’라고 생각하며 시키는 대로 일했어요. 돌아온 건 노예 취급이었어요. 잘못됐다고 느끼면 바로 잡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박정설 조합원이 밝히는 결의다. 박정설 조합원은 “느끼는 만큼 싸워서 이 공장을 바로잡아야 해요. 이 공장을 우리 힘으로 바꾸고, 당당하게 다닐 수 있는 안전하고 좋은 일터를 만들 때까지 투쟁할 거예요”라며 눈을 반짝였다.

▲ “포기는 원청과 업체들이 바라는 거잖아요. 돈으로 목줄 죄면 포기할 거로 생각해요. 만도헬라의 계획대로 두 손 들고 들어갈 수 없어요. 그렇게 들어가면 끝이잖아요. 평생을 노예처럼 비굴하게 살아야 하고 만도헬라에 노동조합을 다시 세우지 못할 거예요.” 지회 조합원들이 공장 정문 앞에서 퇴근 투쟁을 알리는 구호를 외친다. 카랑카랑한 구호 소리가 개미 한 마리 지나가지 않는 공장 블록을 감싼다. 인천=신동준

“당당해졌어요. 특근 빠지고 연차 쓰고 조퇴하려면 원청의 눈치를 많이 봤어요. 금속노조 가입한 뒤에는 내가 필요 한대로 사용해요. 좋아하던 온라인 게임을 끊었어요. 이젠 관심사가 노조밖에 없어요”라고 고백하는 박정설 조합원.

“네이버 검색어도 딱 세 개밖에 안 봐요. 비정규직, 만도헬라, 사내하청. 아침에 일어나면 검색부터 해요. 노조 가입 전에 뉴스를 안 봤는데 뉴스도 찾아봐요. 어떻게든 끝까지 싸워서 이겨야 해요. 지금 지면 평생 이대로 살아야 하잖아요.” 박정설 조합원은 이미 예전의 자신이 아니다. 이 청춘들은 아주 젊고 패기 넘친다. 이 정도 탄압에 타협하고 포기하지 않는다.

신재홍 조합원 역시 금속노조 조합원이 되고 나서는 당당한 노동자 권리의식을 얻었다. “비정규직은 당연히 받아야 할 대우를 못 받고, 회사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처지라고 생각했어요. 금속노조 가입하고 나서 달라졌어요. 이젠 누가 어떤 얘기를 던져도 당당히 의사 표현 할 수 있어요.” 젊은 만큼 흡수가 빠르다.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아는 청년들이다.

한샘 지회 여성부장은 노동조합을 통해 일취월장하는 자신을 느낀다. “우리 요구가 절대 세지 않아요. 원래 노동자 것인데 원․하청이 뺏은 거 달라는 거잖아요. 자본은 그걸 놓치기 싫은 거고요. 생각이 넓어졌어요. 먼저 활동한 금속노조 선배들 얘기 들으며 많이 배워 뇌가 커진 것 같아요.”

한샘 여성부장은 자랑도 했다. “일 그만둔 사람들이 기사 봤다고 전화해요. 만도헬라 동료들이 노동조합을 잘 만들고 이기면, 다른 공장 사람들이 따라서 노조 가입할 거라고요.” 이들은 노동조합이 다른 노동자들에게 많이 전파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만도헬라와 불법 도급업체들은 ‘강철은 단련되는가’를 대수롭지 않게 보아 넘기고 있는 셈이다.

만도헬라와 불법파견 도급업체들은 탄압과 버티기로 ‘물정 모르고 덤빈 청년들’에게 세상의 쓴맛을 보여주며 백기 투항을 기대할 것이다. 자본은 이 고통의 과정을 넘어선 청년들이 어떤 노동자로 거듭날지 상상하지 못한다. 노동운동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만도헬라 청년 노동자들은 지금 담금질을 받는 무른 쇳덩어리다. 나약하고 힘없는 개인에서 강철 노동자로 다시 태어나는 중이다. 설령 정말 힘든 한 두 명은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 물 한두 방울이 튄다고 큰 강줄기가 멈추거나 되돌아갈 리 없다.

만도헬라비정규직지회 조합원 등 벽보에 ‘우리가 이긴다’라고 쓰여 있다. 지금 지회 투쟁은 피해갈 수 없는 고통과 시련의 과정에 잠시 놓여있다. 서로 잡은 손 놓지 않고 이 과정을 이겨내면 반드시 이길 수밖에 없는 투쟁이다. 이 조합원들 옆에서 17만 금속노조 조합원이 함께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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