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년간 보수정부의 경제적 무능과 부정·부패에 좌절하고 분노한 시민들의 자발적인 촛불 혁명과 국민적 염원은 문재인 정부의 집권을 가져왔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의 소탈한 서민행보와 5·18 기념식 참여와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논란이 되고 있는 국정교과서 폐지,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기간제 교사 2명에 대한 순직 인정, 노후 화력 발전소와 고리 원자력발전소의 가동중단 등은 구체적인 정책 변화를 열망하는 많은 국민들에게 신선한 자극과 함께 문재인 정부의 개혁 성공에 대한 기대감을 낳고 있다.

 

개혁을 위한 ‘정책 창(policy window)’은 일시적으로 열리고 예고 없이 닫쳐

대다수 국민이 원하고 바라는 것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이 같은 가시적이고 적극적인 정책 행보는 하나의 정책이 사회를 바꾸고 정치를 바꿀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국민 대다수의 지지에 기반 한 개혁의 길도 사회적 주요 정치행위자들의 이해관계 상충으로 곳곳에 지뢰가 묻혀 있는 험로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한 사회의 주요 사회 경제적 제도 및 정책 변화를 가져 올 정책공간은 어느 순간 일시적으로 열리고 예고 없이 닫친다. 미 정치학자 킹돈(Kingdon)에 따르면, 개혁을 위한 ‘정책 창(policy window)’은 경제적 위기 또는 사회혁명, 또는 정권 교체 시기에 한 사회가 당면한 문제(problems)와 그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담고 있는 정책 아이디어(policy), 그리고 이러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정치적 지도자가 주도하는 정치(politics)가 함께 어울러졌을 때 비로소 열리게 된다. 따라서 새 정부 하에서 개혁이 성공을 이루기 위해서는 이러한 정책 개혁의 창이 열릴 때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가시적인 정책의 성과로 엮어내기 위한 주요 행위자들의 지혜와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새 정부 초기 일 년 이내에 개혁하지 않으면 더 이상의 개혁은 힘들다고 주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새롭게 열린 정책 공간에서 우리가 해야 할 가장 큰 개혁 과제는
‘2017년 노동체제’ 패러다임을 구축하는 일

문재인 정부의 등장으로 열린 정책 창(Policy Window)과 정치공간에서 우리가 이루어야 할 가장 중요한 개혁과제는 1987년 민주화 운동과 노동자대투쟁으로 주조된 ‘87년 노동운동 체제’를 새로운 노동패러다임에 기초한 ‘2017년 노동체제’로 바꾸는 일이다. ‘87년 노동체제’는 기업 내 병영적 노동통제에서 점차 벗어나 노동 기본권에 기초한 기업별 노조 운동의 확산과 함께 등장한 대립적 노사관계 체계라고 할 수 있다. ‘87년 노동체제’는 극심한 노사대립으로 장기간 파업에 따른 사회적 비용과 손실을 낳았다. ‘87년 노동체제’속에서 수많은 노조활동가들이 해고되거나 투옥되었으며, 노동정책 역시 경제적 생산의 주요 담지자이자 한 축인 노동을 정부의 정책결정과정에서 배제시켰다. 1997년 IMF 경제위기는 대립적 ‘87년 노동체제’의 지형을 다시금 크게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외환금융위기 시 구제금융의 전제조건으로 IMF가 제시한 금융, 기업, 금융, 노동 등 소위 4대 개혁조치들은 철저히 신자유주의 경제이데올로기에 기초한 것이었다. 무엇보다 유연적 노동시장과 자본 개방을 핵심으로 한 개혁조치 결과, 대량 해고와 상시적 구조조정으로 높은 청년 실업율과 중장년층의 조기 퇴직 등 고용 불안정이 일상화 되었으며, 새로이 생겨나는 일자리는 대부분 비정규직 노동으로 채워졌다. 또한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극심한 임금 격차와 노동조건의 차이는 소득과 사회적 불평등을 가속화 시켜 한 국가사회를 두 개 시민사회로 변모시켰다. 신자유주의 시장 논리 하에서 펼쳐지는 극심한 경쟁사회의 출현과 소득격차, 그리고 고용 불안정에 따른 극심한 스트레스는 OECD국가 중 자살률 세계1위라는 오명을 가져다주었다. 김대중 정부 이후 노사정위원회가 구성됨으로써 일시적으로 IMF 경제위기 극복을 목적으로 ‘구조조정의 정치’와 ‘사회협약의 정치’가 동시에 시도되면서 정책결정 과정에서의 노동에 대한 소극적 포섭이 일시적으로 시도되기는 했지만 노무현 정부 이후 노동에 대한 배제로 전제로 한 ‘87년 노동체제’의 속성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지난 10년간 보수정부의 노골적인 반노동 친기업 정책으로 자본과 노동간 임금단체협상은 한층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전개되었다.

2016년 가을 ‘촛불집회’는 박근혜 정부와 최순실의 비리에서 시작되었지만 그 이면에는 IMF 경제위기 이후 신자유주의가 그 동안 우리 사회에 빚어놓은 극심한 고용불안정과 청년실업, 그리고 중장년층의 고용위기와 노후의 삶에 대한 불안정 등 더 이상 우리 사회를 이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는 민심과 총체적 사회위기에 발로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문재인 정부의 시대적 정신과 소명은 바로 우리 사회의 모순과 문제 해결을 가로 막는 ‘87년 노동체제’의 대립적 구도를 타파하고 진정 우리 사회에서 노동의 가치가 존중되는 사회에 바탕을 둔 새로운 ‘2017년 노동체제’를 구축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2017년 노동체제’ 패러다임의 핵심은 바로 산별노조다

‘87년 체제’가 노동의 배제에 기초한 대립적 노사 관계와 갈등에 따른 제로 섬 게임의 노동체제라면 새로운 ‘2017년 노동체제’는 기본적으로 인간 삶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노동의 핵심적 가치를 존중하고 노동의 기본권과 기본적인 삶을 보장해 줄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 포섭과 협력적·포용적 노동패러다임으로 자리매김해야 할 것이다. ‘2017년 노동체제’는 자본과 노동, 그리고 정부가 함께 하는 사회적 대화와 협치 구조를 근간으로 하지 않을 수 없다. ‘2017년 노동체제’는 기존의 ‘노사정위원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뛰어 넘는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 대화 기구 모색에서 출발하여야 할 것이다. 기존 ‘87년 노동체제’하에서의 노사정위원회는 실질적 사회적 대화기구라기 보다는 사회경제개혁 과제를 둘러싼 이해 관계자인 노사정 간의 상호간 신뢰가 부족한 가운데 이후 민주노총마저 탈퇴함으로써 정부의 노동정책 집행을 위한 들러리 협의기구라는 비판을 줄곧 받아왔다. 이에 따라 새 정부 들어 기존 ‘노사정 위원회’ 폐지와 새로운 사회적 대화기구 구성방안에 대한 논의가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간략히 요약해 본다면 대체로 많은 노동연구자들은 지난 ‘노사정위원회’의 활동 경험 속에서 중앙차원에서의 상설 사회적 대화기구 보다는 공동의 사회적 의제 및 개혁 과제를 논의하기 위한 산업, 업종, 또는 지역을 중심으로 한 사회적 대화 채널 구축 등 중층적 사회적 대화 틀에 공감하고 있다. 이와 함께 중간 수준에서의 사회적 대화 및 정책 협의체 구성과 관련하여 산별노조의 중요성과 사회적 역할의 필요성이 한층 강조되고 있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우리 사회가 당면한 가장 큰 정책 이슈는 바로 일자리 문제 해결과 사회적 불평등 구조의 완화라고 할 수 있다. 신자유주의 경제체제하에서 일자리는 밥이고 일자리가 복지인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좁은 취업의 문을 뚫기 위해 수많은 스펙을 쌓아도 일할 곳이 없는 청년들에게 더 이상의 희망은 있을 수 없다. 자신들보다 더 가난한 아들의 세대를 바라보면서 당장 노후에 대한 대비가 없는 부모들의 미래에 대한 걱정과 한숨도 깊을 수밖에 없다. 문재인 정부의 핵심 일자리 정책은 바로 ‘더 좋은 일자리’와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 내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저성장이 지속되는 뉴노멀 경제와 제4차 산업혁명 시대의 도래 속에서 ‘더 좋은 일자리’와 ‘더 많은 일자리’를 어떻게 만들어낼 것인가는 하는 문제는 정책 입안자들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구성원 모두의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이와 관련하여 최근 민주노총 산하 금속노조가 현대기아차에게 제시한 5000억원 규모의 ‘일자리 연대 기금’ 조성방안과 보건의료노조의 ‘50만개 보건의료 일자리 창출’을 위한 일자리 위원회 보건의료분과 설치 제안 및 ‘비정규직 일자리 전환을 500억 기금조성’ 등은 새 정부 하에서의 산별노조의 정책 및 활동 방향과 관련하여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산별노조는 일자리 문제와 비정규직 전환, 성과연봉제와 저성과자 퇴출 등 우리 사회가 직면한 주요 문제를 풀기 위한 기업과 정부와의 정책 협의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또한 초기업단위의 단체 교섭과 기업 간 조율을 통한 연대임금 정책 및 노동조건의 차별 철폐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사람중심 시장’과 ‘노동존중사회’ 건설을 약속했던 문재인 정부도 당면한 일자리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노조, 기업, 정부 등 모두 경제주체의 참여와 협력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에서 각종 정부위원회 구성 시 주요 이해관계자들에 과감한 문호 개방과 함께 새로운 사회적 대화기구 설치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 이와 함께 새 정부는 향후 정책 파트너로서의 산별노조의 중요성을 감안하여 노조 조직률 제고 및 산별노조의 단체협약 효력 확장을 위한 관련 법 개정에도 적극 나설 필요가 있다. 

 

이종선 /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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