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싸움은 울산에서 굉장히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 지회가 무너지면 울산에 있는 현대글로비스 하청업체 노동자들은 앞으로 금속노조 만들지 못 할 겁니다. 금속노조 전체가 우리 투쟁을 심각하게 생각하고 적극 나서야 합니다.”

절실하지 않은 투쟁이 어디 있으랴. 노조 울산지부 동진지회(지회장 임송라, 아래 지회) 조합원들의 표정은 결연했다. 동진오토텍이 2월1일 차체사업부를 폐업한 날부터 한 달 넘게 천막 농성을 벌이고 있고, 인터뷰 당일인 3월17일도 현대글로비스 주주총회에 맞춰 새벽부터 울산에서 올라오느라 피곤할 법도 한데 지친 기색은 찾아볼 수 없었다.

지회 조합원들은 “우리 싸움은 현대글로비스와 울산에 있는 현대글로비스 하청업체 노동자 전체의 대리전”이라며 인터뷰 내내 “반드시 민주노조를 지키고, 싸움에서 이기겠다”는 결의를 밝혔다.

 

현대글로비스, 동진오토텍 단체협상에 결정권 가져

현대글로비스는 울산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울산에서 동진오토텍을 포함해 현대글로비스에 공식으로 납품하는 하청업체가 열다섯 곳이다. 이들은 모두 현대글로비스 한 곳과 거래하고 있다.

임송라 지회장은 “과거 현대자동차와 하청업체가 직접 거래했는데 지금은 현대글로비스가 중간에 끼어들어 자신을 통해야만 거래할 수 있게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서 일하던 사내하청업체들이 공장 밖으로 나오는 과정에서 현대글로비스와 계약을 맺었다는 설명이다. 두 명이 하던 일을 한 명이 하는 식으로 인력도 줄였다. 현대글로비스는 현대자동차그룹과 계약을 독점함으로써 하청업체 매출의 15~20%를 가져간다.

열다섯 개 하청업체에게 다시 하청을 받는 방식으로 비공식 현대글로비스와 거래하는 하청업체들까지 포함하면 현대글로비스의 영향력은 그야말로 막강하다. 동진오토텍은 열다섯 개 하청업체 가운데 주요업체다. 차체사업부 폐업 전까지 동진오토텍과 FU 두 하청업체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열다섯 개 하청업체 전체 노동자의 절반을 차지했다.

▲ 임송라 지회장은 “하청업체 노동자들은 어쨌든 앞으로도 현대자동차그룹 영향력이 미치는 곳에서 일할 사람들이다. 협상 잘하거나 분위기를 잘 타서 노동조합을 유지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자기 인생을 걸고 노동조합을 시작하지 않는 이상 불가능하다. 우리 지회가 여기서 무너지면 현대글로비스 하청업체에서 노동자 스스로 노동조합을 만들 가능성이 사라진다고 본다. 그래서 우리가 이 싸움에서 꼭 이겨야 한다”고 결의를 밝혔다. 신동준

김태균 지회 교육선전부장은 “동진오토텍이 임금을 동결하면 다른 하청업체도 임금을 동결하고, 동진오토텍이 임금을 인상하면 다른 업체도 같은 액수만큼 임금을 올렸다”며 “현대글로비스가 어떤 정책을 시행할 때 동진오토텍에 먼저 적용하고 이후 다른 하청업체로 확대 적용했다”고 설명했다. 임송라 지회장은 “현대글로비스가 노무 관리, 근태 관리 등에 개입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현대글로비스의 영향력은 지난해 단체교섭 과정에서도 드러났다. 임송라 지회장은 “동진오토텍은 교섭이 끝나면 현대글로비스로 달려가 교섭상황을 보고하고, 지시를 받았다. 교섭 중간에 현대글로비스가 전화로 지시를 내리는 경우도 있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임송라 지회장은 “동진오토텍이 사소한 사항 하나 결정할 수 없어 현대글로비스 허락을 받아야 하는 사실이 교섭의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고 강조했다.

 

아이템 따라 사람 이동, 다른 업체 가면 수습부터 시작

올해로 설립 26년째인 동진오토텍은 사실상 자회사인 동진로지텍, 동진기업을 거느리고 있다. 동진오토텍이 현대글로비스와 계약을 맺으면 동진로지텍, 동진기업과 물량을 나눈다. 동진오토텍 뿐 아니라 울산에 있는 현대글로비스 하청업체들은 비슷한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동진오토텍과 동진로지텍은 차체, 의장, 글라스를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 서열 납품한다. 임송라 지회장은 “같은 공간에서 같은 일을 하고, 사람도 서로 왔다 갔다 한다”며 “형식적으로 두 회사지만, 실제로 한 회사나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동진기업은 현대자동차에 들어온 부품을 검사하고, 컨베이어 벨트로 옮기는 피딩 작업을 한다.

예국권 동진로지텍 대표가 세 회사를 총괄하고, 예국권 대표 아들인 예상우와 김순영 부회장이 동진오토텍 대표를 맡고 있다. 현재 동진기업을 제외하고 동진오토텍, 동진로지텍 노동자만 지회에 가입한 상태다.

임송라 지회장은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열악한 실태를 드러내는 사례로 근속년수 문제를 꼽았다. 아이템이 고가에서 저가로 떨어지는 주기가 5년 정도인데 현대글로비스는 하청업체 관리 차원에서 아이템을 한 업체에 맡기지 않고 여러 업체에 돌아가며 맡긴다. 이 과정에서 하청업체 노동자들도 아이템을 따라 이동한다. 업체를 옮기면 이전 업체에서 일한 근속년수를 인정받지 못한다.

“근속이 한 10년이면 두세 번은 다른 업체에 간다. 팔려가는 거다. 다른 업체에서 다시 수습부터 시작해서 6개월 수습을 마친 뒤에야 상여금을 받을 수 있다. 근속년수나 연차도 물론 처음부터 시작한다.”

▲ 조합원들의 노력에 힘입어 설립 두 달 만에 동진오토텍과 단체협약을 맺었다. 가장 큰 성과는 휴가비 쟁취였다. 지회는 이번 단체협약을 통해 추석과 설 명절 휴가비 30만 원, 현대자동차 휴가 때 휴가비 20만 원을 받기로 했다. 그러나 동진오토텍은 포기하지 않았다. 단체협약에 합의한 지 두 달밖에 안 된 2월1일 차체사업부를 폐업하고 휴로스란 업체에 차체사업을 넘겼다. 고용승계가 안 된 여섯 명을 제외한 노동자들은 휴로스로 넘어갔다. 3월20일 동진오토텍 현장을 지지 방문한 박유기 현대자동차지부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현대자동차지부 제공

휴업수당을 지급하지 않은 문제도 있다. 김태균 교육선전부장은 “파업 등으로 회사가 휴업하면 무급으로 일하거나 강제로 연차를 쓰도록 했다”고 비판했다. 근로기준법 46조는 “사용자의 귀책사유로 휴업하는 경우 사용자는 휴업 기간 동안 그 근로자에게 평균임금의 100분의 70 이상의 수당을 지급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김태균 교육선전부장은 “지회가 단체협약으로 요구한 내용은 근로기준법, 취업규칙 지키라는 수준이었다. 동진오토텍 자신들이 만든 취업규칙도 지키지 않는 현장에서 눈치 보며 개처럼 일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2월1일 차체 폐업… 3월 말까지 의장, 글라스 폐업 계획

동진오토텍 노동자들은 이런 상황을 바꾸기 위해 지난해 10월3일 지회를 결성했다. 동진오토텍은 지회가 설립되자 기업노조를 만들어 지회를 무력화하려 했지만 노조 설립신고서를 내지 않았다. 임송라 지회장은 “조합원들의 노력으로 동진오토텍으로부터 항복 선언을 받은 것”이라고 강조했다.

“처음 기업노조 인원이 지회보다 두 배 정도 많았다. 노동조합 만들 때 다 그렇듯이 동진오토텍이 지회 조합원들을 회유, 협박하는 과정이 있었다. 조합원들이 적극 동료들을 만나고 설득해 지회로 끌어들였다. 교섭대표노조를 정하는 시점에서 지회 조합원들이 더 많았다. 동진오토텍은 어차피 기업노조를 만들어봤자 교섭대표노조도 아니고 노조가 두 개면 노무관리도 힘들겠다고 생각해서 결국 기업노조를 만들지 않았다.”

이런 조합원들의 노력에 힘입어 설립 두 달 만에 동진오토텍과 단체협약을 맺었다. 가장 큰 성과는 휴가비 쟁취였다. 지회는 이번 단체협약을 통해 추석과 설 명절 휴가비 30만 원, 현대자동차 휴가 때 휴가비 20만 원을 받기로 했다.

그러나 동진오토텍은 포기하지 않았다. 단체협약에 합의한 지 두 달밖에 안 된 2월1일 차체사업부를 폐업하고 휴로스란 업체에 차체사업을 넘겼다. 고용승계가 안 된 여섯 명을 제외한 노동자들은 휴로스로 넘어갔다.

임송라 지회장은 휴로스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제가 알기로 휴로스는 경기도에서 기아자동차에 서열 납품을 하던 업체다. 기계장비 임대, 물류 쪽으로 회사를 몇 개 갖고 있다. 우리가 단체교섭을 할 때 동진오토텍이 파업 대비 명목으로 다른 업체에 우리 아이템을 옮기고 가서열을 했는데 휴로스가 그때 차체를 가서열했던 업체다.”

동진오토텍은 차체사업부 폐업도 모자라 남아있는 의장사업부, 글라스사업부를 폐업하고 다른 업체에 사업을 넘기려 한다. 지회가 매각 저지 투쟁을 벌이면서 동진오토텍이 2월 초로 계획한 폐업이 계속 미뤄지고 있다. 임송라 지회장은 “동진오토텍과 업체들이 3월15일에서 3월 말까지 폐업하려고 말을 맞췄다. 일단 3월15일은 넘겼다. 3월 말까지 힘겨루기를 벌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먼저 인식한 사람이 먼저 실천한다”

지회는 동진오토텍이 차체사업부를 폐업한 2월1일부터 천막 농성을 시작했다. 지회는 조합원들을 두 조로 나눠 의장, 글라스를 주야로 돌아가며 지키고 있다. 김태균 교육선전부장은 “폐업에 반대하는 차원을 넘어 천막농성장에서 지회에 대한 얘기를 나누고, 다른 지회 동지들이 연대 방문을 오는 등 천막농성을 통해 단결과 연대를 실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동진오토텍이 아이템을 빼는 등 도발할 가능성에 대비하는 전술이기도 하다.

지회는 다른 하청업체에서 일주일에 두 번 출퇴근 선전전을 벌이고 있다. 하청업체들은 지회가 배포한 유인물을 수거하고, 일대일로 면담해 노동조합 가입 여부를 확인하는 등 노동조합 설립을 막기 위한 공작을 펴고 있다.

임송라 지회장은 “다른 협력업체 노동자들도 노동조합을 만들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쉽지 않다. 관리자 눈치를 보며 유인물을 받는 정도”라고 설명했다.

“하청업체 노동자들은 어쨌든 앞으로도 현대자동차그룹 영향력이 미치는 곳에서 일할 사람들이다. 협상 잘하거나 분위기를 잘 타서 노동조합을 유지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자기 인생을 걸고 노동조합을 시작하지 않는 이상 불가능하다. 우리 지회가 여기서 무너지면 현대글로비스 하청업체에서 노동자 스스로 노동조합을 만들 가능성이 사라진다고 본다. 그래서 우리가 이 싸움에서 꼭 이겨야 한다.”

10여 년 전 동진오토텍에서 노동조합 설립을 생각한 노동자들이 있었지만 현대글로비스에 가로막혀 시도조차 못 했다. 그때 노동조합을 만들려 했던 이들은 지금 회사 편에 서 있다. 그만큼 현대글로비스 하청업체에서 노동조합 만들기가 어렵다.

지회는 민주노조 사수 투쟁을 포기 할 생각이 없다. 임송라 지회장은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다. 우리가 열심히 하면 함께 할 사람이 생길 것”이라며 “먼저 인식한 사람이 먼저 실천하면 자연스럽게 노동조합이 바라는 대로 이뤄질 것”이라는 희망을 내비쳤다.

김태균 교육선전부장은 “쉽지는 않겠지만, 다른 하청업체에서 노조를 만들려 하면 연대하겠다”라고 약속했다.

인터뷰 사흘 뒤인 3월20일 지회는 쟁의행위 찬반투표에서 95%의 압도적인 찬성으로 쟁의행위를 결의했다. 임송라 지회장은 “동진오토텍이 폐업을 일방 강행하면 파업을 벌일 계획”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저작권자 © 금속노동자 ilabo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