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국적 기업이 지배하는 세계화 생산체계 아래 노동자들은 경쟁에 내몰린다. 사용자들은 “강성노조 때문에 이 나라에선 사업 못 하겠다”며 노동비용이 더 낮은 나라로 생산시설을 이전하겠다고 위협하기 일쑤고, 일자리를 잃게 될 위험에 처한 노동자들은 어쩔 수 없이 임금과 노동조건 저하를 받아들여야 한다. 사업장이나 일국적 수준의 투쟁으로는 이런 ‘바닥을 향한 경주’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없다.

국제 노동운동은 이를 제어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기업, 산업 차원 노사관계와 마찬가지로 초국적기업과 해당 기업에 고용된 전 세계 노동자 대표 또는 국제산별노련 사이의 교섭을 통해 국제적인 수준에서 모든 노동자에게 노동기본권을 보장하고, 임금과 안전·보건 기준, 각종 규제를 동일하게 적용하는 협약을 맺었다. 이를 ‘국제기준협약’(GFA: Global Framework Agreement)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노력 끝에 지금까지 전 세계 112개 기업이 국제산별노련들과 국제기준협약을 체결했다.

 

국제기준협약 체결 경로: 초국적 수준의 조직화, 교섭, 투쟁

국제통합제조산별노련(IndustriALL)은 지난해 9월 브라질에서 열린 세계총회에서 국제기준협약 확대를 중점 사업 과제로 채택해 향후 4년 동안 추진키로 했다. 이를 위해 초국적기업의 생산기지와 글로벌 공급사슬을 따라 조직화를 시도하고, 기업 내 단체협약에 관한 정보를 공유하여 공동 교섭전략을 마련하기로 했다. 또한, 초국적 기업 내 공동투쟁을 위해 파업 등 직접행동을 벌일 권리를 지키고, 세계종업원평의회와 같은 대화창구 개설을 시도하기로 했다. 이렇게 국제기준협약이 체결되면 이를 다시 각국의 고용안정, 조직화, 단체교섭을 촉진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 현대‧기아차 글로벌 노동자 네트워크는 국제기준협약 체결을 목표로 삼았고, 현대자동차지부·기아자동차지부는 이를 단협 요구로 제시해 왔으나 아직 진척이 없다. 해외공장과 공급사슬 전체에 걸쳐 노동기본권을 보장하고 같은 노동기준을 적용하기 위한 시도, ‘바닥을 향한 경주’를 멈추기 위한 시도를 지속해야 한다. 현대‧기아차 글로벌 노동자 네트워크 회의 참가자들이 2012년 9월 슬로바키아에서 회의를 마치고 기념촬영을 하고있다. 국제통합제조산별노련 제공

국제통합제조산별노련은 산업 차원의 초국적 산별협약도 병행 추진할 계획이다. 초국적 의류브랜드와 국제산별노련이 맺은 ‘방글라데시 소방건물안전 협약’, ‘의류산업 글로벌 공급사슬 최저임금 보장을 위한 양해각서 체결’이 그 실마리가 될 수 있다. 국제산별노련의 최근 관심사는 국제기준협약 적용 범위를 본사나 자회사뿐 아니라 하청업체, 부품사 까지 넓히는 것이다.

 

이행·감시 장치 없는 국제기준협약은 공허한 선언

국제기준협약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선언’이나 ‘기업 윤리 강령’과 다른 점은 사용자의 일방적 선언이 아니라 노동조합과의 교섭을 통해 나온 산물이라는 데 있다. 그러나 구체적인 이행 방안이나 감시 장치가 없으면 국제기준협약도 사용자의 일방적 선언과 별반 다를 게 없다. 또한, 노동조합이 국제기준협약을 새로운 생산기지에서의 조직화, 단체교섭 촉진을 위해 활용할 때 국제기준협약이 비로소 의미를 발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국제통합제조산별노련과 인디텍스(Inditex) 사이에 체결된 국제기준협약은 모범사례로 꼽힌다. 인디텍스 국제기준협약은 그룹 내 모든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그룹 공급사슬 내 모든 노동자에게 적용된다. 해당 사업장에 국제통합제조산별노련 소속 노동조합이 없어도 적용 대상이다.

국제통합제조산별노련은 이 협약을 노조 결성 시도나 원직복직 투쟁, 하청업체 노동조건 감시 등에 활용해 왔다. 2012년에는 보충협약을 체결하여 협약 위반사항이 발생했을 때 이를 보고하고, 바로잡는 데 단위노조 역할을 강화하고, 협약에 대한 연수‧교육제도를 만들어 단위노조뿐 아니라 공급사슬 내 각급 관리자들이 참여하도록 했다. 2016년에는 터키를 시작으로 국제기준협약 이행 담당자를 뒀다.

다임러 벤츠 국제기준협약 역시 본사, 자회사뿐만 아니라 부품사, 하청업체도 같은 원칙을 받아들이고 준수하도록 지원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세계종업원평의회와 각국 노조는 터키와 브라질에서 부품사가 노조를 인정하지 않자 국제기준협약을 근거로 연대 행동을 펼쳤다.

 

현대·기아차 국제기준협약 체결을 향해

금속노조는 국제산별노련과 함께 2009년~2013년 현대‧기아차 글로벌 노동자 네트워크 회의를 매년 꾸준히 열었다. 각국 공장 상황을 교류하는 것부터 시작해 2013년 회의에서는 한국, 체코, 슬로바키아, 독일, 터키, 인도 노동자 대표들이 현대·기아차를 겨냥한 공동요구를 채택했다. 공동요구 내용은 ▲각국 노동조합과 건설적인 대화에 착수할 것 ▲해외 공장에서 민주노조 가입·설립을 탄압하지 않을 것 ▲국제통합제조산별노련과 국제기준협약을 체결하기 위해 공개적이고 효과적인 대화에 착수할 것 등이다.

현대‧기아차 글로벌 노동자 네트워크는 국제기준협약 체결을 목표로 삼았고, 현대자동차지부·기아자동차지부는 이를 단협 요구로 제시해 왔으나 아직 진척이 없다. 해외공장과 공급사슬 전체에 걸쳐 노동기본권을 보장하고 같은 노동기준을 적용하기 위한 시도, ‘바닥을 향한 경주’를 멈추기 위한 시도를 지속해야 한다.

류미경 <민주노총> 국제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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