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인용과 5월 대선이 가시화되면서 노동계의 대선 논의도 본격화되고 있다. 지난 2월 7일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의 ‘민중단일후보와 선거연합정당건설’을 둘러싼 논란은 그 출발이었다. 단일한 대오처럼 보였던 조직의 속살은 공론화의 장에서 여지없이 드러났고, 대중조직에서 정치방침 결정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절감하는 학습의 시간이었다. 분열된 진보정당과 노동자 정치세력화에 대한 다양한 이견이 표출되면서 민주노총이 주도하는 정치세력화는 상당기간 지체될 수밖에 없음을 확인하였다.

그렇다고 손 놓고 낙담할 일도 아니다. 세력교체, 시대교체보다 정권교체의 열망이 더 절박하게 다가오고 있음을 인정하자. 정치세력화의 토대인 노동의 사회세력화가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수용해야 한다. 10.3%의 낮은 노조조직률, 완강한 기업별체제의 울타리에 갇혀 있는 노동조합, 고용형태별 양극화와 기업규모별 격차 확대는 노동의 계급연대와 정치세력화를 가로 막는 장벽이다. 노동 의제가 정치사회 변혁의 핵심 과제가 될 수 있는 사회 기반과 토대를 구축해야 한다. 사회세력화의 전제는 노사간 힘의 균형을 보장할 수 있는 노동기본권의 보장 및 확장에서 출발한다.

 

사회적 배제, 역주행한 노동의 권리

이명박근혜정부 9년은 ‘노동 배제’의 겨울공화국이었다. 보수정부의 장밋빛 공약의 민낯은 노동공약에서도 확인되었다. 이명박정부의 747공약은 대국민 사기로 판명되었고, 친기업정책은 사회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켰다. 새누리당과 한 몸이었지만 차별화가 필요했던 박근혜는 말로는 번듯한 노동공약을 제시했다. ‘정리해고 요건 강화, 근로시간단축, 상시·지속적 업무 정규직 고용, 비정규직 사회보험 적용확대, 최저임금의 대폭 인상’이 그 골자였다. 노동공약과 병행하여 일자리공약으로 늘리고(늘)·지키고(지)·질을 올리는(오)는 ‘늘지오 공약’을 제시했다.

박근혜정부 4년, 노동사회의 현 주소는 어떠한가. 노동공약의 이행 여부를 보자. 첫째, 정리해고 요건 강화이다. 쌍용차에서 드러난 대량해고의 사회경제적 위험을 막기 위해 정리해고 요건을 강화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어떤 변화도 없었다. 거꾸로 정년 60세 법제화를 빌미로 임금피크제를 강요하고, 명예퇴직과 희망퇴직 등 변칙적인 정리해고가 판친다. 현행법 제24조 제1항은 “사용자가 경영상 이유에 의하여 근로자를 해고하려면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어야 한다. 이 경우 경영 악화를 방지하기 위한 사업의 양도·인수·합병은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는 것으로 본다”고 규정하고 있다. 경영상 이유에 의한 해고의 요건 중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는지 여부에 대하여 대법원 판례는 과도하게 탄력적으로 해석한다. 특히 생산성 향상 및 경쟁력의 회복 내지 증강에 대처하기 위한 작업형태의 변경, 신기술의 도입이라는 기술적 이유에 따른 인원삭감 조치, 장래에 올 수도 있는 위기에 미리 대처하기 위한 경우 등까지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는 것으로 해석되면, 해고를 제한하여 근로자들의 생존권을 보장하고자 하는 노동법 체계의 근간이 뒤흔들릴 수밖에 없다.

둘째, 노동시간 단축이다. 현행법은 근로시간을 1주 40시간으로 제한하고 있고(법 제50조) 연장근로 한도는 주당 12시간이므로(법 제53조) 최대 근로시간은 주당 52시간이다. 그러나 정부는 휴일근로가 1주에서 제외된다는 행정해석을 통해 주당 최대 근로시간을 68시간이라 판단하고 있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정부의 노동시간 관련 개정안은 “휴일근로를 연장근로에 포함하도록 해 주당 근로시간을 정규 40시간, 연장 12시간으로 52시간으로 한다, 다만 중소기업 등에서는 4년에 걸쳐 근로시간 단축을 단계적으로 진행하고, 2023년까지는 노사합의로 주당 8시간의 특별연장근로를 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이다. 노동시간은 법을 개정할 필요도 없이 잘못된 행정해석을 바로 잡아 주 52시간인 근로기준법부터 제대로 지키면 될 일이다.

셋째, 전교조와 공무원노조의 법외노조화이다. 2013년 10월 24일 고용노동부는 전교조에 대하여 ‘법상 노조 아님’ 통보를 하였다. 해고교원이 조합원 자격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였다. 또한 2016년 정부는 해고공무원의 조합원 자격을 이유로 공무원노조에 대하여 5번째 ‘설립신고’를 반려하였다. 해고자의 조합원 자격 제한 규정을 근거로 노동조합의 지위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명백한 노조 탄압이며, 법 규정에 대한 과잉 해석이다. 국가인권위원회, 국제노동기구(ILO), 국제노동조합연맹(ITUC) 모두 한국 정부에 노동기본권 보장을 촉구하고 있다. 교원, 공무원에 대해 별도의 입법을 예정하고 있는 노조법 제5조 단서를 삭제하고, 노조법에 교원, 공무원을 포섭함으로써 현행 공무원·교원 노조법을 폐지하는 것이 올바른 입법방향이다.

넷째, 최저임금의 대폭 인상이다. 고용노동부의 ‘2015년도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15년 6월을 기준으로 중위임금의 3분의 2 미만을 받는 저임금근로자 비중은 23.5%이다. 미국에 이어 OECD 국가 중 2위로 높은데, OECD 평균은 16.3% 수준이다. 통계청의 ‘2015년 하반기 지역별 고용조사, 취업자의 산업 및 직업별 특성’에 따르면 전체 임금근로자 1952만9000명 가운데 월급이 200만원 미만인 사람은 47.4%에 달한다. 저임금 해소를 위해서는 다양한 정책 대안이 필요하지만 가장 효과적인 방안은 법정 최저임금의 인상이다. 최저임금은 저임금 근로자의 소득을 향상하고 노동시장 내 격차를 해소하여 소득분배 상황이 개선될 수 있도록 결정돼야 한다. 하지만 법의 취지를 반영하지 못한 채 2017년 최저임금은 시급 6470원에 머물러 있다. 더 중요한 사실은 법정 최저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받는 근로자가 7명 중 1명꼴에 이를 정도로 많다. 최저임금 위반 사업자에 대한 엄격한 법 집행과 느슨한 감독체계를 해소하지 않으면 저임금을 축소할 수 없다.

이렇듯 보수정부 9년 동안 노동은 잊혀진 존재였다. 아니 경제성장의 걸림돌이고, 자기 이익만 배타적으로 추구하는 이기주의 집단으로 내몰렸다. 노동은 개혁 주체가 아닌 대상이었고, 걸림돌로 취급 받았다.

 

사회개혁은 노동권 보장과 산업 민주주의로

촛불시위는 탄핵과 정권교체를 넘어 사회개혁으로 전진한다. 절망과 분노의 대한민국을 뒤엎을 희망의 노래를 만들어야 한다. 그 출발은 노동 존중, 행복한 일터, 산업 민주주의 확립이다. 희망의 대한민국은 승자독식도, 경제 양극화도 아닌 ‘함께 사는 공정사회’이다. 불평등·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한 제도적 방안은 노조 조직률 높이기, 산별교섭의 실현, 공동결정제도에 기반한 산업민주주의 구현이다. 노동의 조직화가 사회 불평등을 축소한다는 주장은 노동조합만의 주장이 아니다. 국제통화기금(IMF)도 노조 조직률이 하락할수록 소득 불평등이 커진다는 보고서를 발간하였다. IMF의 ‘불평등과 노동시장 기관’(Inequality and Labor Market Institutions) 보고서에 따르면 경제정책과 기업의 의사결정과정에서 노동조합이 미치는 영향력이 작을수록 소득 불평등이 커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노조 조직률이 10%p 하락하는 동안 소득상위 10%의 소득은 약 5% 증가했다.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양대 세력인 노동과 자본이 힘의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박근혜체제를 극복하자고 말하면서 그 속에 노동권 보장과 재벌 개혁이 없다면 그것은 말짱 도루묵이다. 노동의 권리를 강화할 때 그 속에서 ‘일에 대한 헌신’이 발휘되기 때문이다. 노동권 보장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 핵심은 미조직노동자들이 스스로 조직을 만들고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사회적인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재분배 이전에 1차 분배를 개선하고 가계소득을 늘리려면 대기업 정규직뿐만 아니라 대다수 노동자들의 임금이 올라야 하며 이들의 힘이 커져야 한다. 경제민주화와 공정한 하청거래를 통해 중소기업을 키우고 좋은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서도 노동자들의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

첫째, 단결권이다. 비정규직의 노동권 보장을 위해 노동자성·사용자성을 확대해야 한다. 국제노동기구(ILO)는 고용관계의 존재여부를 기준으로 하여 결사의 자유가 보장되는 자의 범위를 결정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현재 국제적인 추세는 고용관계가 확인된 노동자뿐만 아니라 노동자와 자영인의 경계에 존재하는 ‘경제적으로 종속적인 노동자’에게까지 노동3권과 같은 기본 권리를 확대하여 보장하려는 흐름이다. 많은 국가에서 특수고용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결성 또는 가입하여 단체교섭을 하고 단체협약을 체결하고 있다. 또한 간접고용의 확산 방지와 함께 ‘원청의 사용자성’을 인정하여 이들의 권리를 보장하여야 한다.

둘째, 단체교섭의 정상화이다. 산별노조는 광범위하게 설립되었으나 산별교섭은 진전되지 않고 거꾸로 후퇴하고 있다. 사용자들은 사용자단체를 탈퇴하고, 기업별교섭을 도모한다. 한국의 임금불평등이 OECD국가 중 가장 높은 것은 노동시장 요인 이외에 극도로 분권화되고 파편화된 기업별 노사관계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ILO 역시 산업별-지역별 ‘단체협약 확장제도’를 권고하고 있다. 산별교섭이 미약한 이유 중 하나는 교섭의 상대방인 사용자단체가 마땅하지 않다는 점이다. 기업별 교섭에서 노동조합이 설립되어 교섭을 요청하면 사용자가 이를 거부할 수 없고 거부하면 부당노동행위가 되는 것처럼, 산별노조가 산별교섭을 요청하는 경우에 사용자단체를 구성 또는 연합하여 교섭에 응할 의무를 부과하여야 한다. 한발 더 나아가 노동자 경영참가를 보장해야 한다. 우리의 경우 기업의 경영권은 사용자의 독점적인 권한이라는 주장이 강하지만 대다수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참여 자본주의(Stakeholder Capitalism)가 확산되고 있다. OECD 다수의 국가들은 기업의 핵심 이해당사자인 노동조합의 경영참여를 보장하고 있다. 유럽연합 28개 회원국 가운데 18개 국가는 ‘노동자 대표의 이사회 등 경영참여’를 제도적으로 보장한다. 협력적 노사관계의 구현은 공짜가 아니다. 노사 간 ‘정보공유’를 통한 ‘신뢰의 축적’이 쌓일 때 만들어지는 결과물이다.

셋째, 단체행동권의 보장이다. 노동자들의 마지막 저항 수단인 단체행동권이 손배가압류로 무력화되고 있다. 과거 손해배상 청구는 경영진들의 교섭 압박 수단으로 활용되어, 교섭이 마무리되면 청구소송을 중단하는 사례가 많았으나, MB정부 이후 손해배상은 노조무력화 수단으로 변화하였다. 쌍용자동차는 노조에 100억 원, 한진중공업은 158억 원, KEC는 306억 원을 청구했고, 법원은 각 노조에 33억 원, 59억 원, 30억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2016년 현재 22개 노조에 1,600억 원의 손해배상과 175억 원의 가압류가 부과되어 있다. 문제는 우리나라 노조법 제3조가 ‘사용자는 이 법에 의한 단체교섭 또는 쟁의행위로 인하여 발생한 재산적 손해에 대하여 노동조합 및 근로자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천문학적 손해배상 청구가 잇따르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노조법이 ‘정당한(이 법에 의한)’ 단체교섭 및 쟁의행위에 대한 민사면책만을 규정하고 있기에, 쟁의행위가 이 법에 의한 ‘정당성’ 요건을 완전히 갖추지 못하는 경우에는 거액의 배상책임을 부담하게 된다. 단체행동권을 옭아매는 손배가압류 방지법을 시급히 제정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노동3권의 실현을 위해 노동권의 글로벌스탠더드를 준수해야 한다. ILO의 핵심 협약인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에 관한 협약(제87호)과 단결권 및 단체교섭권에 관한 협약(제98호) 비준은 정부의 노동기본권 보장 의지를 확인할 수 있는 리트머스 시험지이다.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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