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9월, 영국 노동당 지도부 선거에서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무명의 사회주의자 제러미 코빈이 뜻밖의 압승을 거둔 것이다.

제러미 코빈 당선으로 1997년 토니 블레어가 ‘제3의 길’이란 기치 아래 추진한 신노동당(New Labour) 프로젝트에 정치적 사망선고가 내려졌다.

1년 뒤 2016년 6월 브렉시트 충격 속에 발생한 노동당 쿠데타와 새 지도부 선거에서 제러미 코빈은 다시 압승을 거두며 코빈 불패 신화를 탄생시켰다. 코빈 불패 신화를 가능하게 한 것은 노동당을 다시 노동자들의 것으로 만들길 원하는 풀뿌리 당원의 힘이었다.

 

사회주의자의 길

1949년 영국 남동부 윌트셔에서 태어난 코빈은 평범한 노동자 가정의 둘째 아들로 자랐다. 전문대를 중퇴한 뒤 여러 노동조합에서 상근자로 활동하다 1974년 24세에 구의원에 선출돼 1983년까지 의정활동을 펼쳤다. 코빈은 1983년 이슬링턴 북부 선거구에서 하원의원으로 선출돼 8선 하원의원을 지냈다.

▲ 코빈의 승리는 개인의 지도력 때문이 아니라 당내 민주주의와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풀뿌리 당원들의 염원과 기대 덕분이었다. 신노동당 체제에서 썰물처럼 빠져나갔던 당원들이 다시 돌아오고 정치를 외면했던 젊은 세대들이 당의 토대를 구축하고 있다. 2016년 7월 기준으로 노동당 당원은 51만5천명으로 보수당원 14만9천8백명을 압도하고 있다. 이들이 노동당의 미래이며, 제러미 코빈은 그들을 정직하게 대변하고 있다.

코빈은 하원의원이면서도 다양한 진보적 사회운동에 참여했다. 영국 대표적 반핵운동단체인 비핵화 캠페인(CND) 부의장이고 반전연합(StWC)에도 참여했다. 당내 좌파모임인 사회주의 캠페인 그룹(SCG)에서도 활동했다.

코빈은 노동당 좌파로 신노동당 집권 시기(1997~2010년) 동안 428차례나 당 지도부 방침에 반대한 가장 반항적인 의원이었다. 그러나 개인으로서의 코빈은 자가용도 없이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소박하고 검소한 이웃이었다.

 

2015년 지도부 선거, 뜻밖의 압승

노동당은 2015년 5월 총선에서 손쉬운 승리를 예상했지만 보수당에게 참패를 당했다. 총선패배 책임을 지고 에드 밀리번드 대표가 사퇴하면서 앤디 번햄, 이베트 쿠퍼, 리즈 캔덜 등 유력주자들이 지도부 선거에 뛰어들었다.

그런데 코빈이라는 의외의 복병이 등장하면서 상황이 복잡해졌다. 겨우 출마자격을 얻은 제러미 코빈은 당내에서 실종된 좌파의 목소리를 대변하기 위해 지도부 선거에 나서겠다고 출사표를 던졌다.

노동당에서 새로운 대안이 나타나자 코빈의 인기는 치솟았고 그의 선거운동 집회에 지지자들이 몰렸다. 당 외부 잠재적 지지자들도 3파운드를 내고 투표권을 갖는 등록 지지자로 선거에 대거 참여했다.

결과는 상상 밖이었다. 제러미 코빈은 역대 최대 표차로 주류 후보들을 상대로 압도적 승리를 거뒀다. 토니 블레어가 1994년 얻은 표보다 더 많았다. 코빈은 당원과 소속단체, 등록 지지자 세 부문에서 모두 압도적으로 이겼다.

 

브렉시트와 쿠데타, 재선거

의원단을 장악하고 있는 구주류(신노동당 계열)는 갖은 술수와 편법으로 선거를 막장 드라마로 몰고 갔다. 구주류는 2016년 브렉시트 국민투표 패배를 빌미로 불신임 표결을 강행해 쿠데타를 시작했다.

선거전이 벌어지자 구주류 세력은 ‘당 대표 후보는 소속 하원의원 또는 유럽의회 의원 20% 이상의 지지를 얻어야 한다’며 코빈의 출마 자격에 시비를 걸었다. 이들은 당원 투표자격 기준일을 6개월 전인 1월로 규정해 약 13만 명에 달하는 신입 당원 투표를 저지했다.

그런데도 코빈은 영국 노동당 지도부 선거에서 압승을 거뒀다. 2015년 9월24일 발표된 결과에 따르면 제러미 코빈은 총 31만3천209표(61.8%)를 득표해 쿠데타의 기수로 나선 오웬 스미스(19만3천229표, 38.2%)를 눌렀다. 이번 선거에는 자격 유권자 65만4천6명 중 50만6천438명이 투표에 참가해 77.6%에 달하는 높은 참여율을 보였다.

노동당 의원단(PLP) 다수 반란에 직면했던 제러미 코빈은 당원과 등록지지자, 소속단체 세 부문에서 모두 압도적 승리를 거두면서 블레어-고든파의 쿠데타를 잠재웠다. 당원 16만8천216표(59.0%), 등록지지자 8만4천918표(69.9%), 소속단체 6만75표(60.2%)를 얻어 깔끔하게 승리했다.

 

노동당의 미래-풀뿌리 민주주의와 사회주의

코빈의 승리에도 불구하고 노동당은 여전히 내전 상태다. 코빈이 등장하기 전 당을 장악한 주류세력은 기층 당원 뜻을 무시하고 자신들만의 리그로 당을 사유화했다.

노동조합 소속 당원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소속단체 부문 영향력을 줄였다. 1980년대까지 당내 좌파세력이 강했던 지구당 권리도 줄였다. 기존 주류세력은 지구당 기층 당원들의 권리를 짓밟으면서 언론과 합작해 노동당을 사실상 해체하고 있었다.

브렉시트 국민투표가 보수당 우파와 극우파가 주도한 한 편의 거대한 사기극이었다면, 이어진 노동당 지도부 선거는 노동당 전통 지도부를 자처하는 세력의 민낯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저질 막장 드라마였다.

그러나 그들은 코빈에게 패배했다. 코빈의 승리는 개인의 지도력 때문이 아니라 당내 민주주의와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풀뿌리 당원들의 염원과 기대 덕분이었다. 신노동당 체제에서 썰물처럼 빠져나갔던 당원들이 다시 돌아오고 정치를 외면했던 젊은 세대들이 당의 토대를 구축하고 있다. 2016년 7월 기준으로 노동당 당원은 51만5천명으로 보수당(14만9천8백명)을 압도하고 있다.

이들이 노동당의 미래이며, 제러미 코빈은 그들을 정직하게 대변하고 있다.

원영수 <국제포럼>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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