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쎄요. 딱히 힘든 건 없었는데요.”

2월20일 한국옵티칼하이테크 구미공장에서 만난 노조 구미지부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임원, 간부들은 ‘노동조합 활동하면서 가장 힘든 점이 뭐였냐’는 질문에 조금 난처한 얼굴로 ‘별로 힘들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지난해 11월25일 지회 설립 이후 회사와 두 달가량 교섭을 벌였고, 2월13일부터 확대간부들이 교대로 천막 농성을 시작한 지 8일째니 피곤할 법도 한데 한사코 별로 힘들지 않았단다.

하지만 한번 말문이 터지니 지회를 설립한 후 지금까지 임금을 못 받은 사연, 회사가 지회 설립을 막기 위해 지회장을 감금한 이야기 등이 줄줄이 나온다. 힘든 점을 물었을 때 감금당한 이야기는 왜 하지 않았느냐고 물으니 “그런 것까지 이야기해야 하는 줄 몰랐다”며 머쓱하게 웃는다. 자신의 힘듦을 과장하거나 불평하지 않고, 힘들어도 묵묵히 노동조합 간부로 맡을 일을 하는 이들은 신규지회인 노조 구미지부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지회장 나형주, 아래 지회) 조합원들이다.

 

수백 억 원 이익내고 임금 동결한 회사

한국옵티칼하이테크는 노트북, 이동전화기에 사용하는 LCD 편광필름을 생산하는 업체로 모기업인 일본기업 ‘Nitto’가 지분 90%를 소유하고 있다. 오희찬 사무장은 “모기업인 Nitto는 계열사가 108개, 매출이 8조원에 달하는 대기업”이라며 “일본에서 한 번 입사하면 평생직장으로 삼고 싶어 하는 아주 좋은 회사”라고 설명했다. 한국옵티칼하이테크는 이익잉여금이 1천6백억원, 단기 순이익이 370억원에 달하는 알짜기업이다. 하지만 직원 처우는 열악했다.

예철수 수석부지회장은 “회사가 3년 동안 임금을 거의 동결했어요”라며 “노동조합 가입을 안 했으면 아마 올해도 임금을 동결했을 겁니다”라고 설명했다. “회사가 적자라서 임금을 동결한다고 해왔고, 다들 그런 줄 알았어요. 알고 보니 이익이 수백 억 원 났는데 임금을 동결해온 거예요. 직원들은 그렇게 임금 동결해놓고 임원들은 수익 가운데 절반 정도를 배당받아요. 우리 회사 임원들은 대기업 임원보다 더 연봉을 많이 받아요. 그런 불만이 컸는데 노동조합이 없으니 불만을 이야기할 수 있는 통로도 없었죠.”

▲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는 2월13일 쟁의조정 신청을 했다. 지회 조합원들이 이날 공장 한편에 천막농성장을 만들고 확대간부 철야 농성을 시작하며 집회를 하고 있다. 지회 제공

Nitto 계열사인 한국니토옵티칼(코레노)과 차별에 대한 불만도 컸다. 나형주 지회장은 “같은 Nitto 계열사이고 같은 업종인데 차별이 심했다. 업무 강도는 우리가 훨씬 높은데 코레노가 임금은 훨씬 높다”며 “코레노에 본사에서 온 일본 사람이 많아서 그런 것 같다”고 설명했다.

오희찬 사무장을 중심으로 불합리한 회사 상황에 불만을 품은 노동자들이 지난해 9월부터 지회 설립을 준비했다. 임강순 구미지부 교육선전부장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처음에 걱정이 많았어요. 젊은 사람이 많아서 거의 다 노동조합 경험이 없거든요. 다행히 교육을 거듭할수록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부 사무실에 20~30명이 모여 사무실이 꽉 찰 정도로 많은 노동자가 교육에 참석했거든요. 그때 교육받은 40명 정도가 각자 현장에서 조직 사업을 벌였고, 설립 이전에 이미 90% 정도를 조직했죠.”

 

설립 보고대회 앞두고 지회장 감금 시도

지회 설립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지회 설립 기미를 눈치 챈 회사는 설립을 하루 앞두고 나형주 지회장을 감금하려 했다. “ㄱ 관리자가 지난해 11월23일 갑자기 전화해서 공장으로 들어오라고 하더군요. 그 사람이 저한테 개인적으로 전화한 건 처음이니까 ‘노동조합 때문이구나’ 하고 생각은 했죠.”

예상대로 ㄱ 관리자는 나형주 지회장을 불러 “노동조합 만들지 마라. 노동조합 만들면 회사 망한다”고 겁박했다. 나형주 지회장이 노동조합을 설립하겠다는 뜻을 꺾지 않자 ㄱ 관리자는 면담이 끝난 후 나형주 지회장이 12시간 야간 근무를 서는 내내 옆에서 감시하고 근무가 끝난 후에 “노동조합을 만들지 않겠다고 약속하라”며 공장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했다. “오희찬 사무장에게 연락해서 경찰을 부르고 나서야 간신히 공장 밖으로 나올 수 있었어요. 14시간 붙잡혀 있던 셈이죠. 그런 경험은 처음이니까 많이 당황스러웠어요.”

▲ 나형주 지회장은 감금에서 풀려난 뒤 바로 총회를 열어 지회 설립일을 다음 날인 11월25일로 잡았다. 나형주 지회장은 11월25일 지회 설립일을 떠올리며 “그때의 감동을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퇴근하는 조합원들, 원래 휴무조인 조합원들까지 새벽에 나와서 사측이 막아놓은 정문을 뚫고 지회를 설립했죠. 드디어 우리 회사에 금속노조 지회가 생긴다고 생각하니 감동적이었죠.” 구미=김경훈

나형주 지회장은 감금에서 풀려난 뒤 바로 총회를 열어 지회 설립일을 다음 날인 11월25일로 잡았다. 나형주 지회장은 11월25일 지회 설립일을 떠올리며 “그때의 감동을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퇴근하는 조합원들, 원래 휴무조인 조합원들까지 새벽에 나와서 사측이 막아놓은 정문을 뚫고 지회를 설립했죠. 드디어 우리 회사에 금속노조 지회가 생긴다고 생각하니 감동적이었죠.”

 

세 달 동안 임금 못 받으며 싸워

지회 설립 뒤 회사는 면담에서 “창구단일화 절차를 밟아 교섭하겠다. 부당노동행위는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임강순 교선부장은 “지회 설립보고 대회에 참석한 조합원 수를 보고 회사도 간단하게 막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란 사실을 알았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설립 당시 조합원은 470여 명. 지회 조합원은 2월20일 현재 533명으로 세 달 전보다 60여 명이 늘었다. 나형주 지회장은 “생산직은 98~99%가 가입했고 사무직도 일부 지회에 가입했다”고 덧붙였다.

조직률이 높다고 해서 모든 일이 수월하게 풀리지 않는다. 지회 임원, 간부들은 11월25일 노조 발족식 이후 지금까지 임금을 못 받고 있다. 나형주 지회장은 “은행 대출로 버티고 있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가족들이 싫어하지는 않냐’고 물어보니 “그냥 뭐…”라며 웃어넘긴다.

안동찬 조직부장은 “아내가 걱정을 많이 했다”고 털어놨다. “아내가 예전에 KEC에 다녔어요. 정리해고 투쟁 전에 그만두긴 했지만, KEC 다녀서 노동조합 활동이 얼마나 힘든지 아니까 지회 간부 맡는다고 할 때 많이 싫어했죠. 특히 집 나와서 천막 치고 싸운다고 하니까 못 하게 말리지는 않지만 싫어하는 티가 났어요. 천막 농성 시작한 후 한 번 천막에 왔는데 모습을 보니 마음이 많이 안 좋은 것 같더라고요.” 안 조직부장은 “그래도 천막 농성을 길게 안 하고, 바로 의견일치를 봐서 다행”이라며 웃어 보였다.

임강순 교선부장이 “지회장과 간부들이 참 많이 고생했다”면서 “근무 교대가 4일 일하고 2일 쉬는 방식인데 지회 활동 때문에 쉬지도 못하고 임금도 못 받으면서 많이 힘들었을 것”이라고 거든다.

평균 나이가 27.3세일만큼 젊고, 노동조합 활동 경험이 없는 조합원이 많다 보니 조합원들이 노동조합 활동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안동찬 조직부장은 “처음 집회할 때 ‘추운데 왜 우리까지 나와야 하냐. 이런 건 간부들이 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고, 안 나오려는 조합원들도 있었다”며 “활동하면서 조금씩 노동조합 활동이 어떤 건지 이해하고 따라오고 있다”고 말했다.

▲ 지회는 지난해 12월12일 첫 교섭을 시작으로 회사와 수차례 교섭을 벌이다 2월10일 결렬 선언을 했다. 지회는 2월13일 쟁의조정 신청을 하고, 공장 한편에 천막을 쳐 확대간부들이 교대로 철야 농성을 시작했다. 지회가 2월16일부터 이틀 동안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벌이자 회사는 “요구사항을 들어줄 테니 교섭을 마무리하자”고 했다. 지회는 2월17일 14차 교섭에서 2016년, 2017년 단체협약과 임금협약에 의견접근하고, 2월20일 총회에서 찬성 95.7%로 단체협약과 임금협약을 체결했다. 구미=김경훈

 

임금체계 개편, 복지수준 향상…주요 요구 쟁취

지회는 지난해 12월12일 첫 교섭을 시작으로 회사와 수차례 교섭을 벌이다 2월10일 결렬 선언을 했다. 지회는 2월13일 쟁의조정 신청을 하고, 공장 한편에 천막을 쳐 확대간부들이 교대로 철야 농성을 시작했다. 지회가 2월16일부터 이틀 동안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벌이자 회사는 “요구사항을 들어줄 테니 교섭을 마무리하자”고 했다. 지회는 2월17일 14차 교섭에서 2016년, 2017년 단체협약과 임금협약에 의견접근하고, 2월20일 총회에서 찬성 95.7%로 단체협약과 임금협약을 체결했다.

나형주 지회장은 합의안에 대해 “핵심 요구는 모두 쟁취했다”고 평가했다. 가장 중요한 쟁점은 임금체계 개편이었다. 현재 한국옵티칼하이테크는 평일, 주말 관계없이 4일 근무하고, 2일 쉬는 형식으로 일한다. 기본급은 주말 근무 여부에 따라 크게 다르고, 높을 때도 80만 원 선에 불과하다. 회사가 기본급을 낮게 산정하는 대신 각종 수당으로 최저임금 수준에 임금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지회는 이번 잠정합의안에서 기본급을 고정하고, 상여금을 기본급 기준 600%에서 통상임금 기준으로 700%로 올리는 등 임금 수준을 올리는 데 성공했다.

복지 수준도 올리기로 합의했다. 근속수당 인상, 장기근속자 표창 등 장기근속자에 대한 처우를 개선하기로 했다. 직급별로 차이가 있던 학자금, 건강검진 지원을 직급 구분 없이 모든 사원에게 똑같이 지원하기로 했다.

오희찬 사무장은 “임금과 복지 수준이 많이 올라 조합원들이 기뻐하고 있다”며 “지회를 처음 만들 때 ‘과연 잘 될까, 이러다가 넘어지지 않을까’ 불안했는데 막상 이렇게 잘 풀리니 신기하다”고 말했다.

 

“조합원 교육, 조직화해 내년 대비하겠다”

지회는 2월23일 조인식을 사흘 앞둔 지금부터 내년 투쟁을 생각하고 있다. 임강순 교선부장은 “노동조합이 파업을 준비하면 회사가 보통 6개월 전부터 다른 회사에 대체생산을 맡기는 식으로 대비한다. 올해 회사가 준비를 못해 승리할 수 있었다”며 “내년에 회사도 반격을 준비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대신 내년을 잘 버티면 당분간 지회를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나형주 지회장은 “순식간에 조합원 500여 명이 모이다 보니 지회도 조합원을 모두 통제하기 어려웠고, 교육이 부족했던 측면이 있다”고 말한다. 지금은 조합원들이 “노동조합하면 임금 많이 올라서 좋다”고 생각하는 수준이지만, 이제 노동조합을 지키기 위해 조합원으로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더 고민하게 만들 계획이다. 나형주 지회장은 “중간간부층을 탄탄하게 만들어 현장 활동가로 양성하고, 조합원을 교육, 조직화하면서 내년을 대비하겠다”는 결의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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