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조합 없애려고 그랬겠죠.”

지난 1월24일 설을 이틀 앞두고 조합원 62명 전원이 문자로 해고통보를 받고 투쟁하고 있는 동광기연지회 박태호 조합원은 묻기도 전에 단도직입으로 말한다. 박태호 조합원은 한 달 뒤면 근속 30년이 된다. 강산이 세 번 바뀔 동안 동광기연에서 잔뼈가 굵어 사측이 왜 그랬는지 직감으로 아는 것이다.

“1987년 2월26일, 스물일곱 살에 입사해 50대 중반을 넘어가 정년퇴직이 4년 남았어요.” 박태호 조합원은 입사 일까지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박 조합원은 동광기연 현장에서 최고참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출근해서 일했고 어느새 30년이 지났어요. 내 청춘도 공장에서 함께 흘렀습니다. 1월24일도 출근해 조회를 했습니다. 동광기연 매각했다고 발표하데요. 조회 서고 있는 중에 문자가 와서 열어보니 오늘부로 해고했다는 문자였어요. 순간 너무 당황해 멍해지고 아무 생각도 안 났어요. 정신 차리고 나니 이게 뭔가 싶고 자존심이 무척 상하더라고요.”

담담하게 말하지만 박태호 조합원이 받았을 마음의 상처가 얼마나 큰지 흔들리는 눈동자가 대신 말해주고 있었다. “열심히 일했어요. 힘들어도 노조가 있으니 해마다 임금이 오르고 복지도 좋아지고……. 노조가 있으니 앞으로 더 나아지겠지 하는 기대도 있었습니다.”

▲ 농성장의 하루는 길고 춥다. 동광기연지회 간부들이 2월7일 농성장 화목난로 땔감으로 쓸 폐자재를 부리고 있다. 가까운 사업장에서 도움을 주고 있다. 인천=신동준

앞으로 더 나아질 거라는 박태호 조합원의 기대와 믿음을 동광기연은 잔인하게 짓밟았다. “사측이 위로금이라고 3개월 치 임금 주겠다고 얘기해요. 애들 장난도 아니고 어이가 없어요. 아이가 넷인데 막내가 고1이고 그 위가 대학 2학년 올라가요. 등록금과 교통비 생활비… 한창 돈 들어갈 일이 많은 시기인데 막막합니다. 이 나이에 갈 곳도 마땅치 않고요.”

50중반을 넘어선 가장이 해고통지서를 받아들고 느꼈을 감정은 ‘막막하다’ 는 말 이외에 다른 말로 설명할 수 없다.

 

지키겠다는 약속 ‘합의서’, 상식을 믿었는데 배 째라?

“구조조정을 하겠구나 하는 느낌은 있었는데 설마 이런 식으로 할 줄 몰랐습니다. 사측이 단체협약에 합의한 대로 최소한의 절차와 양심은 지킬 줄 알았습니다.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칠 줄 꿈에도 생각지 않았습니다.”

우윤명 부지회장은 사측을 믿었다기보다 합의서를 믿었던 것이다. 그동안 노사가 맺은 단체협약과 고용보장 합의서, 확약서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동광기연은 “합의서 위반 맞다. 고소하라”며 지회를 조롱하고 배 째라 식으로 나온다. 속된 말로 양아치들이나 쓰는 수법이다.

동광기연지회는 1988년 6월 민주노조를 결성하고 올해 29년차 된 인천지역에서도 내로라하는 베테랑 지회다. 29년 역사만큼 조합원들의 조직력이 단단해 구조조정을 대비한 단체협약과 관련 합의서는 완벽할 정도로 갖춰놓았다. 그러나 양아치식으로 나오는 동광기연은 단체협약과 합의서를 종이 쪼가리 취급하고 있다. 서류에만 있는 허망한 현실이다.

“안산공장 점거를 풀고 인천 본사 앞으로 농성장을 옮긴다고 해 공장 문을 나서는데 다들 많이 울었어요. 기계라도 잡고 싸우면 뭔가 있겠지 기대했는데… 그냥 나오기 억울해 공장에 불이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어요.” 김판례 조합원은 왈칵 눈물을 쏟는다.

▲ 봄은 아직 멀었다. 동광기연지회 조합원들은 길에 솥을 걸었다. 인천=신동준

기계를 잡고 싸우면 실마리가 보이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무너지는 순간이었고 투쟁이 장기화 될 것이라 예감했기 때문이다. 김판례 조합원은 정년 4년을 앞둔 50대 중반 여성조합원이다. 농성하는 조합원들 끼니를 위해 길에 솥을 걸었다. 종이 박스로 겨울 칼바람을 막고 국을 끓인다. 불 앞에 있어도 찬바람에 손이 곱는다. 설움이 북받쳐 눈물이 그치지 않았고 눈물을 훔치는 시린 손이 빨갛게 텄다.

“본사로 농성장을 옮겨와 쌀이며 김치며 짐을 내려놓았는데 동광그룹이 용역깡패들을 동원해 길바닥에 전부 내동댕이쳤어요. 자기네 땅이니 이런 거 놓지 말라며… 용역들이 김치통을 내동댕이쳐 조합원들 몸이 김치 국물 범벅이 되고 쌀 포대가 터져서 하얗게 쏟아지고 냄비랑 밥솥을 내던지고… 우리 여성조합원들은 주저앉아 서로 붙들고 엉엉 울었어요.”

오늘의 동광그룹이 있기까지 청춘을 바쳐 뒷받침해 준 직원들에게 유내형 회장과 아들 유승훈이 한 짓이다. 은혜를 원수로 갚는 배은망덕이라는 말은 딱 이럴 때 쓰는 말이다. 동광기연지회 조합원 절반은 20년, 30년 근속이다. 짧아야 10년차다. 이 조합원들이 흘린 땀으로 동광은 돈을 벌었고 이 공장을 모태로 지금 11개 계열사를 거느린 동광그룹으로 컸다.

“농성 물품을 패대기치는 걸 보고 당장 쫓아올라가 사장 모가지를 비틀어 죽이고 싶은 마음이었어요. 우리는 없는 걸 내놓으라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하던 일 우리가 계속 하겠다는 거예요. 합의서도 있잖아요. 합의서대로 지키라는 것 뿐 입니다.” 우윤명 부지회장은 답답한 마음을 드러냈다.

 

아들 물려주려고 노조 깨…배 째라면 째주죠

“우리가 만들던 물량을 크레아라는 업체로 매각하고 우리를 쫓아냈어요. 크레아에서 불량을 많이 내서 어제 한국지엠 라인이 끊겼어요. 우리 조합원들 라인에 투입하면 눈 감고도 하는 일입니다. 합의서에 공장을 매각하거나 폐업하면 계열사로 고용승계 한다고 썼어요. 못 미더워서 단체협약을 지키겠다는 확약서를 추가로 받았습니다.”

우윤명 부지회장은 “유내형 회장이 아들한테 그룹을 물려주려고 노조를 깨는 거예요. 다른 이유 없습니다. 그냥은 못 넘어 갑니다”라고 힘주어 말한다. 우 부지회장의 낮고 차분한 목소리에서 깊은 분노와 결기가 느낀다.

▲ 동광기연지회 조합원들이 2월7일 인천 본사 앞에서 퇴근 선전전을 하고 있다. 인천=신동준

“원청인 한국지엠에 1년 넘게 파견 나가 일했어요. 하청업체 소속인 나는 한국지엠에 맞춰줘야 해서 월차 한번을 못 썼거든요. 그런데 마침 한국지엠 라인이 서서 월차를 냈어요. 1년 만에… 월차내고 집에 있는데 해고한다는 문자를 받았어요. 처음에는 ‘월차 냈다고 해고한다는 건가’ 하고 깜짝 놀랐어요.” 품질팀에서 일하는 최수영 조합원의 말이다.

근속 14년차인 김영송 조합원은 “동광기연은 우리한테 자구안에 동참하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매각한다고 핑계를 대지만 익산공장으로 이전하고 다시 인천공장으로, 인천에서 다시 안산공장으로 뺑뺑이 돌았는데 이게 다 우리가 회사를 위해 희생한 거 아닌가요? 동광기연을 위해 간 거지 누가 집 놔두고 인천에서 익산으로 가요”라며 억울함을 토로한다.

“자본가들이 어떻게 해도 용인해주는 허술한 법과 사회가 문제인 것 같아요. 자본가들이 법도 밥 먹듯 어기고 합의서를 어겨도 괜찮으니까 이러는 거잖아요.” 최수영 조합원은 동광자본이 이렇게 파렴치한 짓을 할 수 있는 바탕을 지적했다. 동광기연 유내형, 유승훈 일가가 저지른 범죄는 이 뿐 아니다.

 

동광그룹 유내형, 유승훈 일가는 범죄자 집단

동광기연은 2015년 계열사 인피니티 주식을 주당 230만원에 매입했는데 1년 사이 43만 원이나 오른 가격으로 계열사 주식을 사줬다. 동광기연은 유내형 동광기연 회장 첫째 아들인 유승훈이 최대주주로 있는 SH-INT, SH-BP 등 계열사에 2014년 151억원, 2015년 256억원을 무이자로 대출해줬다. 이 과정에서 동광기연은 은행에서 104억원을 빌리기까지 했다. 은행이자보다 약간 높은 3% 이자만 받았어도 2년 간 10억원이 넘는 이자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유내형 회장은 아들 회사인 계열사에 대가없이 지급보증을 하고 사업기회 몰아주기도 했다. 아들인 유승훈 사장의 SH-BP와 SH-INT에 2014년과 2015년 두 차례에 걸쳐 대가 없이 267억원을 지급 보증했다. 동광기연이 지급보증하고 사업기회까지 몰아주면서 초기 투자 자본금이 각각 5억원과 1억원에 불과했던 두 회사는 2년 만에 자본이 14억원, 93억원으로 급속히 늘었다.

▲ 동광기연지회 조합원들이 농성 천막 앞에 세운 화목난로 앞에 모여 있다. 선전을 앞두고 몸을 데우는 중이다. 인천=신동준

동광기연지회는 유내형, 유승훈 일가를 배임죄로 검찰에 고발했다. 동광기연 유내형 회장은 2001년 9월 거짓 제품 개발계획서로 한국산업기술평가원 기술개발 사업자로 선정돼 정부출연금 4억5천700여만원을 받아 가로챘다. 또 유내형은 2003년 3월부터 5년 동안 허위 전표를 작성해 계열사에서 114억원을 빼돌려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및 사기 혐의로 징역 3년, 집행유예 4년, 벌금 10억원을 선고받은 전력이 있다.

 

이래서 연대, 연대 하는구나… 닥쳐보니 알겠어요

“우리 지회도 투쟁사업장에 연대활동 하러 다녔는데 그때는 이 사람들에게 무슨 큰 힘이 될까 의구심이 들었어요. 막상 우리에게 투쟁이 닥치고 보니 연대가 이렇게 중요하구나 절감했어요. 용역깡패들이 김치 던지고 막 싸우는데 지역 조합원들이 와서 막아줬어요. 그때 정말 고맙고 든든하고 금속노조가 우리 편이라는 사실이 엄청난 힘을 줬어요.” 근속 10년 차 신혜경 조합원의 말이다.

“동광기연지회가 생긴 지 오래되고 조직력이 어느 정도 있다 보니 평소에 좀 안이한 면도 있었거든요. 막상 일이 닥치니까 조합원들 새로운 면을 보게 돼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기 일 척척 알아서 하고 단결이 잘 돼요.” 29년차 베테랑 노조의 조합원들이 저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우윤명 부지회장이 귀띔한다.

동광기연 본사 앞에 천막을 치고 난로도 세웠다. 정리해고 통보를 받은 사람들이라고 생각지 못 할 정도로 조합원들의 표정이 밝다. 조합원들은 두 개조로 나누어 밥 세끼를 해먹고 검찰청, 본사 앞 선전전에 나간다. 농성장이 안정되니 누룽지를 튀겨 먹는 여유를 부린다. 산전수전 겪은 베테랑 조합원이기에 나오는 내공이다.

“싸우다보면 바라는 대로 되겠지요.” 젊은 조합원들은 근거 없는 패기를 드러낸다. 그동안 사측을 상대한 싸움에서 밀린 적은 있어도 진 적은 없는 조합원으로서 갖는 자신감이다. 농성장에 칼바람이 불지만 곧 봄이다. 따뜻한 봄소식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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