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의 말 : 이 글은 홍종인 유성기업 아산지회 조합원이 한광호 열사의 시점에서 쓰고 한광호 열사 300일 투쟁승리 문화제에서 낭독한 편지입니다.]

 

한광호가 조합원들에게

그 날을 잊을 수 없습니다. 6년 전 2011년 5월18일. 현대자동차 각본, 창조컨설팅 주연으로 우리 형제가 일하던 공장에 난입한 검은 옷을 입은 깡패들과 경찰들을…… 깡패들이 던진 소화기에 동료의 머리뼈가 함몰되고, 용역의 무면허 대포차 운전으로 열세 명의 동료들이 쓰러진 그 날을. 이 원통하고 미칠 것 같던 시간을……

▲ 1월10일 서울 양재동 현대자동차그룹 본사에 앞에서 연 ‘뇌물상납 불법파견 노조파괴범죄자 정몽구 구속, 한광호 열사 300일 투쟁승리 문화제’에 참여한 조합원, 시민, 학생들이 유성기업지회 투쟁 승리할 때까지 함께 싸우겠다고 결의하고 있다. 신동준

 

▲ 1월10일 ‘뇌물상납 불법파견 노조파괴범죄자 정몽구 구속, 한광호 열사 300일 투쟁승리 문화제’에서 조합원들이 한광호 열사를 상징하는 등을 농성장 주변에 달고 있다. 신동준

정권이 바뀌면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박근혜 씨가 청와대를 차지한 뒤 부자들의 나라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하나둘 목숨을 잃어갈 때도 저는 정의가 끝내 이길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세상은 조금씩 나아진다는 믿음으로 하루하루 버텨온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박근혜 4년의 시간 동안 달라진 게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열심히 자동차부품을 만들어 좋은 회사를 만들어야겠다는 제 꿈은 무너져 내렸습니다. 잘못을 말하고, 거짓을 밝히는 동료들에게 돌아온 것은 징계와 고소장과 해고였습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형에게 인간다운 회사, 나와 평생을 함께 한 동료들에게 사람 향기 나는 일터를 남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홀어머니를 남겨두고 떠나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 1월10일 ‘뇌물상납 불법파견 노조파괴범죄자 정몽구 구속, 한광호 열사 300일 투쟁승리 문화제’에서 홍종인 전 유성기업 아산지회장이 한광호 열사 시점에서 쓴 편지를 읽고 있다. 신동준

 

▲ 1월10일 ‘뇌물상납 불법파견 노조파괴범죄자 정몽구 구속, 한광호 열사 300일 투쟁승리 문화제’에서 조합원들이 한광호 열사의 편지 내용을 듣고 있다. 신동준

오늘 저는 함께 했던 동지들, 지금도 꿋꿋하게 투쟁하며 승리를 결의하는 동지들을 봅니다. 영하의 서울시청 앞에서 깔판과 비닐을 뺏기면서도 맨바닥에서 잠을 청하던 모습, 한 여름 뜨거운 아스팔트 열기를 이겨내며 양재동을 지키던 모습, 비바람 영하의 날씨에 오체투지를 이어가며 저의 죽음의 책임을 유성기업과 현대자동차 그리고 정권에 묻던 당당한 모습까지……

빛바랜 피켓과 낡아버린 상복, 때로 지칠 때가 있었고 서로에게 날카로운 말들을 던질 때도 있었지만,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분향소를 지켜주며 서로가 잡은 손을 놓지 않고 다독이며 여기까지 와준 동지들…… 정말 고맙습니다.

▲ 1월10일 ‘뇌물상납 불법파견 노조파괴범죄자 정몽구 구속, 한광호 열사 300일 투쟁승리 문화제’에서 가수 이수진 동지가 공연하고 있다. 신동준

 

▲ 1월10일 ‘뇌물상납 불법파견 노조파괴범죄자 정몽구 구속, 한광호 열사 300일 투쟁승리 문화제’에 참여한 조합원, 시민, 학생들이 가수 이수진 동지의 공연에 호응하며 등을 흔들고 있다. 신동준

변하지 않을 것 같던 세상이 변화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혹독한 겨울을 끝내고, 마침내 봄을 피우는 당신들과 함께 새로운 세상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려고 합니다. 이제 지난 6년을 투쟁으로 함께한, 멋지고 자랑스러운 유성동지들을 지켜보며 승리의 함성을 들으려 합니다. 동료들과 웃으면서 일하던 우리의 현장을 반드시 되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노조파괴에 맞서 민주노조를 지키고 있는 내 친구, 내 형제, 내 가족, 유성지회 정말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2017년 1월10일 한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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