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성적인 집회, 빤한 연사와 틀에 박힌 발언, 스마트폰만 보고 있거나 심지어 무대를 등지고 술을 마시는 조합원들……. 노동자문화 하면 흔히 떠오르는 부정적인 모습들이다. 노조가 정체된 노동자문화의 현재를 돌아보고 앞날을 모색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노조는 11월17일부터 이틀 동안 충북 영동 노근리 평화공원에서 문화담당자 교육수련회를 열었다. 이번 수련회는 공동체놀이와 매체별 모임 중심의 기존 문화담당자 수련회와 달리 집회, 시위, 파업프로그램 사례를 모은 금속노조 문화소책자 <노동자문화 길찾기>를 중심으로 진행했다. 민주노총 가맹조직 가운데에서 노동자 문화를 주제로 소책자를 만든 첫 사례다.

이날 수련회에 경기, 경남, 경주, 기아자동차, 대전충북, 쌍용자동차, 인천, 충남지부 등 여덟 개 지부 문화담당자와 문화활동가 40여 명이 참석했다.

 

“조합원을 모든 투쟁 과정에 주체로 세워야”

백일자 노조 문화부장은 경기지부 두원정공지회 투쟁사례를 들어 ‘자발적 투쟁으로 행복한 현장 만들기’란 주제로 강의했다. 두원정공지회는 2014년 회사의 직장폐쇄에 맞서 파업을 벌이고 마침내 직장폐쇄 시도를 분쇄했다.

▲ 11월17일부터18일까지 노조 문화국이 개최한 문화담당자 교육수련회 참석 조합원들이 단체사진을 찍고 있다. 김경훈

백일자 문화부장은 승리 비결로 분임조 편성을 꼽았다. 두원정공지회는 파업 당시 각 조당 5명 내외인 78개 분임조를 구성해 매일 회의를 열어 현안을 토론하고 파업프로그램을 궁리했다. 논의 결과는 매일 중대별로 진행한 총회에서 전체 조합원들과 공유했다. 처음에 스스로 파업을 기획하고 실천하는 데 익숙하지 않던 조합원들이 ‘차라리 지침을 내려달라’고 요구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분임조 편성은 현장 자발성을 높이는 효과를 냈다.

백일자 문화부장은 조합원이 주체가 되어 움직일 수 있는 조건으로 세 가지를 꼽았다. 첫째 투명성이다. 노동조합 운영과 판단, 의사결정 과정을 지도부만 알고 있지 않고 조합원 대부분과 공유해야 한다는 의미다. 둘째 자신감이다. 승리에 대한 자신감과 확신을 조합원들에게 줄 때 비로소 단결력을 확보할 수 있다. 셋째 민주성이다. 백일자 문화부장은 “노동조합이 중요한 판단을 내릴 때 반드시 조합원과 함께 결정할 것이라는 믿음, 모든 투쟁을 나 스스로 결정했다는 자부심은 책임감을 동반한다”고 덧붙였다.

백일자 문화부장은 “조합원의 자발적 참여는 지도부의 바람만으로는 이뤄지지 않는다”며 “조합원을 주체로 세우겠다는 의지를 모든 투쟁 과정에 반영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새로운 기획 보다 조합원 마음 모으는 이야기가 필요하다”

고동민 노조 쌍용자동차지부 사무국장은 ‘노동문화의 위기, 노동운동의 위기’란 주제로 쌍용자동차지부 투쟁사례를 발제했다. 쌍용자동차지부가 2009년 5월22일 정리해고를 막기 위해 총파업에 돌입한 첫날, 파업에 참가한 조합원은 7백여명에 불과했다. 지부 조합원 5천2백여명은 물론이고 정리해고 대상자 5천6백46명에도 크게 못 미치는 숫자였다. 하지만 토론을 통해 조합원을 더 많이 참여시킬 방안을 논의하고, 서로 동료들을 조직하고, 스스로 규율을 세우면서 파업 대오는 2천여 명으로 늘어났다. 고동민 사무국장은 “토론과 조직, 규율이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 박선봉 민주노총 전 문화국장이 11월17일 노조 문화국이 개최한 문화담당자 교육수련회에서 ‘재밌고, 신나고, 의미 있는 집회를 위하여 ’란 주제로 강의하고 있다. 김경훈

고동민 사무국장은 “투쟁을 하면서 늘 새로운 사고와 기획을 하려했지만 새롭다고 생각한 무언가는 누군가 이미 했거나 구상 중인 것이었다”며 “새로운 기획이 아니라 조합원 마음을 모을 수 있는 이야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고동민 사무국장은 “왜 이 문화 행위를 하는지 의미를 잘 전달할 수 있다면 기존 노동자문화 또한 새로운 의미로 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홍명교 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전 교육선전위원은 ‘우리 투쟁에 스토리텔링이 있을까’를 주제로 발제했다. 홍명교 전 위원은 “뛰어난 배우 한 두 명이 있다고 연극이 걸작이 될 수 없듯 힘찬 투쟁 발언이나 좋은 공연 한두 개로 좋은 집회가 될 수 없다”며 “중요한 것은 무대와 무대를 구성하는 형식이며, 이 형식이 어떤 스토리텔링을 갖고 있느냐다”라고 설명했다.

홍명교 전 위원은 “많은 노동관련 기사에서 주어만 바꾸면 서로 그리 다를 바 없는 것이 현실”이라며 “노동자 투쟁은 매력이 있지만 투쟁을 표면화하고, 이야기로 만드는 방법에 익숙하지 않다. 우리만의 이야기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노동자문화, 우리가 즐겁게 만들자”

수련회를 마치며 문화담당자들과 활동가들은 각자 평가를 나눴다. 수련회 참여 조합원들은 “투쟁사업장 사례를 바탕으로 실습까지 연결하면 실제 우리 투쟁에 도움이 될 것 같다”, “집회 문화 전반에 대한 고민, 특히 지금 촛불집회에 대한 고민을 하게 만드는 자리였다” 등의 평가를 내놨다.

수련회를 준비한 백일자 부장은 “노조 투쟁 현장에서 어떤 집회, 시위와 파업프로그램을 진행하는지 사례를 발굴하고자 이 책자를 마련했다”며 “조합원 참여를 끌어내고 사회 연대를 확산한 투쟁들이 어떤 목표와 준비과정을 거쳐 진행했는지 살펴보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백일자 문화부장은 “집행부는 집회에서 ‘쌈박한 것, 틀에 박히지 않은 것’을 주문하지만, 새롭고 다양한 집회는 프로그램만의 문제가 아니라 문화를 바꾸는 문제”라며 “현장 고민을 담은 문화소책자 발간을 이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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