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기 농민의 시신을 실은 운구차가 세종대로로 들어섰다. ‘책임자를 처벌하라’, ‘국가폭력 끝장내자’고 적힌 만장과 꽃상여가 뒤를 이었다. 백남기 농민이 쌀값 보장을 외치며 향했지만 차벽에 막혀 갈 수 없었던 광장,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쓰러져 끝내 살아서는 갈 수 없던 광장에는 시민 1만여 명이 모여 백남기 농민의 마지막 가는 길을 추도했다. 

‘생명과 평화의 일꾼 고(故) 백남기 농민 민주사회장 장례위원회’(아래 장례위원회)가 11월5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백남기 농민 영결식을 치렀다. 백남기 농민이 지난해 11월14일 민중총궐기 집회에서 경찰 물대포에 쓰러진 지 358일, 9월25일 사망한 지 41일 만에 열린 장례식이다.

백남기 농민의 딸 백도라지 씨는 “언제 장례식을 치를 수 있을지 몰랐는데 이렇게 영결식을 치를 수 있게 도와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린다”며 “아버지 삶이 순탄치 않았는데, 가시는 길까지 가시밭길일 줄 몰랐다. 이제 영원한 안식에 드실 테니 마음이 아프더라도 보내드리겠다”고 인사했다.

백도라지 씨는 “아버지를 이렇게 보내지만, 저에게는 여러 숙제가 남았다. 책임자 처벌과 재발 방지 대책이 포함된 사과를 받을 때까지 싸우겠다”며 “잊지 말고 관심과 힘 모아 달라. 아버지께 내년 기일에는 승리 소식을 들려드리고 싶다”고 호소했다.

백남기 농민의 아내 박경숙 씨는 “저희가 오늘 이 자리까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시민 모두가 깊은 애정과 관심을 가져주셨기 때문”이라며 “정말 감사하다”고 고개 숙여 인사했다.

▲ 11월5일 고 백남기 농민 민주사회장에 참석한 유가족, 농민, 노동자, 청년, 학생 등 시민들이 서울 종로 1가 백남기 농민 살해 현장에서 노제를 치르기 위해 행진하고 있다. 신동준

 

▲ 백남기 농민 유가족들이 11월5일 서울 종로1가 고 백남기 농민 민주사회장 노제 현장에서 이삼헌 무용가의 진혼무를 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신동준

 

▲ 백남기 농민의 부활도를 멘 운구행렬이 11월5일 세종대로를 거쳐 영결식을 여는 광화문광장으로 들어오고 있다. 신동준

 

▲ 11월5일 광화문광장을 가득 메운 시민들이 고 백남기 농민 민주사회장 영결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며 민중의례를 하고 있다. 신동준

 

▲ 최종진 민주노총 위원장 직무대행이 11월5일 고 백남기 농민 민주사회장 영결식에서 한상균 위원장의 추도사를 대신 읽고 있다. 신동준

최종진 민주노총 위원장 직무대행은 민중총궐기를 주도한 혐의로 징역 5년을 선고받고 구속 중인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을 대신해 추도사를 낭독했다. 한상균 위원장은 “박근혜 정부의 만행에 아직 책임도 묻지 못했고 처벌도 하지 못했는데 어찌 먼 길 보내드려야 할지 황망하다”며 “박근혜 정부 퇴진으로 책임을 반드시 묻겠다. 민중세상, 대동세상을 만들겠다고 하신 큰 뜻, 그 발자국을 저희가 이어 걸어가겠다”고 약속했다.

정현찬 가톨릭농민회장은 “백남기 농민의 마지막 가는 길에 함께해주신 여러분, 정말 고맙다”며 “박근혜 정부가 물대포로 백남기 농민을 죽였지만, 그 정신은 짓밟지 못한다. 우리 모두가 백남기가 되어 이 땅을 대동세상, 통일세상으로 만들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영호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은 추도사에서 “박근혜 정부가 백남기 농민을 죽이고, 진실을 숨기려 악마의 길을 걸었다”며 “책임자 처벌은 곧 박근혜 퇴진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당장 물러나라”고 촉구했다.

이날 영결식에는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 심상정 정의당 대표, 박원순 서울특별시장, 김종훈 무소속 의원 등 정치권 인사도 참여해 백남기 농민을 죽음으로 몰아간 국가폭력에 대한 특검 실시와 책임자 처벌 등을 약속했다.

영결식 참가자들은 “백남기 농민을 보내며 끝나지 않은 투쟁의 시작을 선포한다”며 ▲ 백남기 농민 살인의 책임자 처벌 ▲국가 폭력 없는 세상 건설 ▲박근혜 정부 퇴진 등을 결의했다.

영결식에 앞서 장례위원회는 오전 8시 서울대병원에서 발인식을 열고, 9시부터 명동성당에서 염수정 추기경 집전 하에 장례미사를 치렀다. 오전 11시30분부터 백남기 농민이 1년 전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쓰러진 서울 종로구 르메이에르 빌딩 앞에서 노제를 지냈다. 이삼헌 춤꾼과 정유숙 소리꾼이 추모공연을 선보여 백남기 농민의 넋을 위로했다.

전명선 4.16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박근혜 정부는 세월호에서 죽어간 304명을 구하지 않았고, 민중총궐기 때는 광기 어린 폭력적 진압으로 백남기 농민을 죽였다”며 “세월호 유가족은 세월호 참사뿐 아니라 백남기 농민을 살해한 국가폭력 주범들을 제대로 처벌하는 그 날까지 함께 싸울 것”이라고 규탄했다.

▲ 11월5일 서울 광화문 세종대로를 가득 메운 노동자, 시민, 청년, 학생 등 20만여명이 ‘모이자! 분노하자! #내려와라_박근혜 2차 범국민행동’에 참여해 박근혜 퇴진을 외치고 있다. 신동준

 

▲ 11월5일 ‘모이자! 분노하자! #내려와라_박근혜 2차 범국민행동’에 참여한 시민들이 광화문 세종대로에서 종로를 향해 행진하고 있다. 신동준

 

▲ 11월5일 왕복 8차선 서울 종로를 가득 메운 시민들이 행진하며 박근혜 퇴진을 외치고 있다. 신동준

 

▲ 11월5일 ‘모이자! 분노하자! #내려와라_박근혜 2차 범국민행동’에 참여한 노조 조합원들이 서울 종로에서 행진하며 박근혜 퇴진을 외치고 있다. 신동준

영결식 참가자들은 이어 오후 4시부터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모이자! 분노하자! #내려와라_박근혜 2차 범국민행동’에 참여했다. 시국선언에 참여한 대학생, 교수·연구자, 교사, 종교인 등 각계각층 시민들이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를 함께 규탄했다.

영결식 행사를 진행하는 동안 5만명이었던 노동자, 시민 참가자는 본격적인 행진에 나설 무렵 20만명으로 불어났다. 이날 전국 30만에 달하는 민중이 촛불을 들고, 박근혜 정부 퇴진을 외쳤다.

민주노총 조합원은 광화문 사거리에서 시작해 종로3가-충무로-퇴계로-서울역-숭례문을 거쳐 다시 광화문 사거리로 행진했다. 행진하는 동안 연도에 선 서울시민들은 박수로 응원했고 도로를 지나는 차량 운전자들은 경적을 울리며 호응했다. 조합원들이 행진을 마칠쯤에는 광화문광장을 가득 메운 시민들이 시청 앞 서울광장까지 운집해 있었다.

한편 백남기 투쟁본부는 6일 오후 광주 금남로에서 노제를 치르고 망월동 민족민주 열사묘역에 고 백남기 농민 시신을 안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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