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벌해요. 죽지 않기 위해서는 살아남아야 하니까 옆에서 사람이 죽어가도 저 사람을 일으켜줄 시간이 없어요. 그 시간에 가서 눈치껏 일을 해야 하니까.”(ㄱ 현대삼호중공업 물량팀 노동자)

“가족관계 위기가 심각해요. 결혼을 앞두고 있는 사람은 결혼을 미루거나 못하기도 하죠. 경제 위기가 발생하면 저축도 못 하고, 외식도 못 하고, 놀러 가지도 못할 테고, 애들 학원비도 끊어야 할 테고.” (ㄴ 삼성중공업 하청노동자)

박근혜 정부가 조선산업 구조조정이라는 명목으로 대량해고를 강행하면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최대 희생자가 됐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조선소 비정규직 노동자는 최근 1년 사이 10명 중 4명꼴로 이직과 임금 삭감 등 노동조건 저하를 겪은 것으로 드러났다.

민주노총과 김경수·이용득(더불어민주당), 박지원·채이배(국민의 당) 노회찬·이정미(정의당), 김종훈(무소속) 의원실은 9월6일 ‘조선산업 하청노동자 구조조정 실태조사 결과 분석과 대안 모색 국회토론회’를 열어 ‘조선산업 비정규직 구조조정 실태조사연구팀’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 민주노총과 김경수·이용득(더불어민주당), 박지원·채이배(국민의당) 노회찬·이정미(정의당), 김종훈(무소속) 의원실이 9월6일 ‘조선산업 하청노동자 구조조정 실태조사 결과 분석과 대안 모색 국회토론회’를 열어 ‘조선산업 비정규직 구조조정 실태조사연구팀’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김경훈

노조와 마창거제 산업재해추방운동연합, 울산 산업재해추방운동연합 등이 만든 ‘조선산업 비정규직 구조조정 실태조사연구팀’(아래 연구팀)은 올해 5~7월 목포·울산·거제·통영·창원에서 조선산업 비정규직 노동자 500여 명을 대상으로 설문과 심층면접을 실시했다.

조사 결과 최근 1년 사이 업체를 옮긴 노동자가 42.76%에 달했다. 옮긴 횟수는 1회가 24.9%로 가장 많았고, 2회(10.64%), 3회(6.02%), 4회(1.2%) 순이었다. 이직 사유는 업체 폐업(39.78%)이 가장 많았고, 임금인상 목적(24.54%), 감원이나 구조조정(13.38%)이 뒤를 이었다. ㄱ 현대삼호중공업 물량팀 노동자는 “용역 형태로 한 달에 열흘에서 보름 사이 일한다. 2016년에 10번도 넘게 업체를 옮겼을 것”이라며 “최근에는 아예 쑥대밭이다. 나쁘게 얘기하면 개 취급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물량 감소로 인한 처우 악화는 심각했다. 조사대상 중 44%가 최근 1년 사이 임금삭감을 경험했다. 임금삭감은 평균 13.2%였고, 이 과정에서 노동자 동의 없는 일방적인 임금 삭감도 발생했다. ㄷ 성동조선해양 하청노동자는 “1~20만 원도 아니고 50만원을 아무 통보도 없이 깎아버리니 도대체 이게 무슨 짓인가 싶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임금 이외 상여금 삭감(25.2%), 복지 삭감(38.8%), 노동시간 감소(31.5%) 등으로 조사대상 중 55%가 실질소득이 줄었다.

▲ ‘조선산업 비정규직 구조조정 실태조사연구팀’이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조선산업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최근 1년 사이 임금삭감, 상여금 삭감, 복지 삭감, 노동시간 감소 등 물량 감소로 인한 처우 악화를 겪고 있다. 조선산업 비정규직 구조조정 실태조사연구팀 제공

 

▲ ‘조선산업 비정규직 구조조정 실태조사연구팀’이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조선산업 비정규직 노동자 중 최근 1년간 업체를 옮긴 노동자가 42.76%에 달했다. 업체를 옮긴 이유는 업체 폐업(39.78%), 임금인상 목적(24.54%), 감원이나 구조조정(13.38%) 순이었다. 조선산업 비정규직 구조조정 실태조사연구팀 제공

물량 감소로 인원이 줄었지만, 노동 강도는 변함없거나 오히려 세졌다. ‘물량 감소로 노동강도에 차이가 있느냐’는 질문에 45%가 ‘별 차이 없다’, 37%가 ‘약간 강해졌다’, 8%가 ‘힘들 정도로 강해졌다’고 응답했다. ㄹ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는 “지금 노동 강도가 최고로 강하다”며 “여기 들어올 다른 업체가 천지니 자기 할당량을 못 하면 나가라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조사 결과 비정규직 중에서도 다단계 하도급 구조의 밑바닥에 있는 물량팀 노동자들이 구조조정 영향을 더 많이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1년 사이 업체를 옮긴 비율이 하청업체 본공은 38%인 반면 물량팀은 58%였다. 임금체불을 겪은 비율도 하청업체 본공은 27.78%지만, 물량팀은 51.77%였다. 물량팀 노동자는 건강보험 등 4대 보험이 체납된 사례도 있었다. ㄷ 성동조선해양 하청노동자는 “건강보험에서 문자가 와서 전화해보니 건강보험이 몇 개월 미납됐다고 하더라. 오래 체납돼 차압이 들어간다고 했다”고 증언했다.

▲ 서쌍용 노조 부위원장이 9월6일 ‘조선산업 하청노동자 구조조정 실태조사 결과 분석과 대안 모색 국회토론회’ 인사말에서 “오늘 토론회에서 나온 대안이 입법으로 이어지길 바란다. 금속노조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고통에 함께하려는 노력을 이어가겠다”고 강조하고 있다. 김경훈

‘위험의 외주화’로 상징되는 열악한 노동안전 환경 문제도 여전했다. 조사대상 중 24.65%가 2년 동안 업무상 사고나 질병 경험이 있다고 대답했다. 이중 산재보험으로 처리한 경우는 16.39%에 불과했다. 재해자 대다수는 공상(51.63%)이나 개인요양(31.14%)으로 처리했다. 산재 처리하지 않은 이유로 블랙리스트 우려(19,78%)와 해고 우려(18.71%)를 꼽는 비율이 약 40%에 달했다.

연구팀은 조선소 비정규직 노동자 보호를 위해 ▲조선산업 구조조정 중단 ▲원청의 사용자 책임 강화 ▲실업급여 지급 기간 연장 ▲조선산업 내 물량팀 고용 금지 ▲비정규직 고용안정책 마련 등을 촉구했다.

하창민 노조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장은 “하청노동자들이 지금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며 “하청노동자들을 불쌍하고 측은한 대상이 아닌 사회 구성원이자 조선소를 이끌어 온 노동자로 보고, 함께 연대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쌍용 부위원장은 토론회 인사말에서 “조선산업 구조조정이 진행되면서 하청노동자가 가장 먼저 피해를 보고 있다”며 “오늘 토론회에서 나온 대안이 입법으로 이어지길 바란다. 금속노조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고통에 함께하려는 노력을 이어가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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