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와 언론을 흔히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의 관계로 표현하곤 한다. 사실 이 말은 언론이 취재원, 특히 정치와 관련한 취재원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지에 대한 원칙을 얘기할 때 등장하는 표현이다. 어떤 면에선 정치 또한 언론에 대해 이런 관계를 설정하려는 듯 보일 때가 있다.

정치인은 부고 기사만 아니면 어떻게든 언론에 자신의 이름과 얼굴이 등장하는 걸 반긴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보통의 경우라면 정치와 정치인은 언론과 최대한 가깝게 관계 설정을 하고 싶어 하는 게 맞다. 하지만 간혹 예외의 상황도 있는 듯 보이는데, 바로 언론에 대해 문제를 제기해야 할 때다.

이런 모습은 주로 야당일 때 나온다. 언론의 자유는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내용이지만, 정작 현실에서 언론, 특히 공영방송의 경우 주요 의사결정을 내리는 지배구조를 구성할 권한이 사실상 선거에서 승리한 쪽에 주어지는 까닭이다. 보도․제작의 자율성을 규정하고 보호할 장치를 방송법 등에서 마련하고 있지만, 인사와 경영 등 굵직한 의사결정을 내릴 권한이 있는 사장은 전체 인원의 3분의 2 이상을 대통령과 여당이 추천하거나 임명까지 하는 이사회에서 선출한다.

다수의 이사들과 이들이 선출한 사장은 저마다 인사권자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구조 속에 있다. 인사의 정점에 대통령이 있다. 이런 구조에서 정권의 방송장악 논란은 수시로 등장하고, 세월호 참사 당시 KBS 전 보도국장이 청와대에서 사장을 통해 보도를 통제했다고 폭로한 것처럼 증언도 튀어나온다. 권력을 잡지 못한 야당 입장에선 불리한 언론 환경과 구조의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 6월14일 추혜선 정의당 의원이 상임위 배정 정정을 요구하는 국회 본관 농성장에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방문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 추혜선 의원 트위터

실제로 현재의 야당이 여당이었던 17대 국회 당시 야당이었던 현재의 여당은 수시로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보도와 같은 방송의 편파보도를 주장하며 KBS 사장을 항의방문이라는 이름으로 찾아가는 일을 주저하지 않았다. 18대와 19대 국회에선 입장이 바뀌어 지금의 야당이 정권의 방송 장악을 지적하며 항의방문에 나서고 언론 정상화를 위한 입법을 공약으로 내건다. 하지만 지금의 야당은 17대 국회 당시 지금의 여당이 그랬던 것처럼 사장실 방문은 하지 못한 채 문 앞에서 청경들과 다툴 뿐이다.

이런 공약과 말만 보면 정치는 때때로 언론의 완전한 자유를 위해, 독립된 언론을 위해 가깝게 관계 설정을 하고픈 욕망을 포기할 줄 아는 듯 보인다. 바로 불가근불가원이다. 하지만 언론은, 방송은 여야가 바뀌고 시간이 흘러도 같은 논란을 반복하고 있는 걸까.

여소야대(與小野大)의 20대 국회가 지난 13일 개원했다. 1당이 된 더불어민주당을 포함한 야 3당은 20대 국회 개원 이전부터 공영방송을 정권에 입김에서 자유롭지 않게 만드는 현재의 지배구조를 개선하겠다며 공조의 의지를 밝히고 함께 연구모임 구성 등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배구조 개선 법안 등을 처리할 방송 관련 상임위원회인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이하 미방위)를 이끌 위원장은 18․19대 국회와 마찬가지로 새누리당 몫으로 ‘선뜻’ 넘겨줬다.

20대 총선에서 야 3당 모두를 통틀어 언론운동가 출신으로는 유일하게 국회의원 배지를 단 추혜선 정의당 의원(비례대표)을 1지망으로 희망한 미방위에서 배제했다. 심지어 비교섭단체 의원 중 경쟁자도 없었다. 이 같은 상임위 배정에 반발한 추혜선 의원이 국회 개원 이틀째인 6월14일부터 농성에 들어갔다. 사흘만인 6월16일 더불어민주당에서 상임위 재배정을 위한 정수 조정 의지를 밝히며 논란 수습의 물꼬를 텄지만, 일련의 모습에서 어제와 오늘의 언론 환경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또다시 고개를 갸웃하고 있다.

본질을 드러내는 건 결국 ‘말’이 아닌 ‘행동’이다. 언론의, 방송의 자유와 독립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정치의 말은 권력의 지형을 바꿀 수 있는 대선이라는 이벤트 앞에서 엇박을 내지 않고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정치와 언론의 불가근불가원은 원칙 속에 기능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의 모습을 종합할 때 정치에만 기대하는 건 무모해 보인다.

김세옥 <PD저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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