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집회 결사의 자유에 대한 최초의 유엔 인권 성적표가 나왔다. 

유엔은 한국법이 국제인권법 기준에 맞지 않으며 과도한 재량권을 가진 정부당국은 집회 결사의 자유를 보호하고 촉진할 의무에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심지어 난폭하고 시끄럽다는 이유로 정부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면 한국이 지금껏 이룩한 모든 것을 훼손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유엔총회 직속 상설기구인 유엔 인권이사회(UNHRC)는 6월17일 9시(스위스 제네바 현지 시간)에 개최한 32차 유엔 인권이사회 회의에서 이 같은 내용을 담은 ‘평화적 집회와 결사의 자유 특별보고관(아래 특별보고관) 한국 조사 보고서’를 발표했다.

 

한국 정부, 국제법 맞게 집시법 개정해야 

키아이 특별보고관 눈에 비친 집회 시위를 대하는 한국 경찰은 차벽으로 평화로운 집회 자유를 사전에 가로막고, 무차별적인 물대포 사용으로 집회 참가자들에게 심각한 위해를 가할 위험성을 높이는 존재였다.

키아이 보고관은 보고서에서 집회에 대한 권리는 정부가 허가해 주는 권리가 아닌 기본권이며, 한국 정부는 적극 이 기본권 행사를 보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신고하지 않은 집회라는 이유로 불법으로 간주해서는 안 되며 이는 긴급 집회에도 해당하고, 긴급 집회는 국제법으로 보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 민주노총 등 인권시민사회단체 대표단이 6월15일 스위스 제네바 유엔 인권이사회 앞에서 백남기 농민과 한국 노동자 탄압을 알리는 거리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참여연대 제공

경찰이 집회를 금지하거나 불법 집회로 간주하는 이유인 교통방해, 시민일상 방해, 소음, 동시 집회 등은 집회 제한 요건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지적하고, 한국정부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 적용관행을 개선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특히 경찰의 물대포 사용은 2015년 민중총궐기 집회에 참석한 백남기 농민 사례에서 보듯 특정인을 조준하는데 이는 정당화하기 어렵다고 못 박았다. 키아이 특별보고관은 한국 정부에게 물대포와 차벽의 사용을 포함한 집회관리 방법 재고화집회 권리 행사를 보장하라고 촉구했다.

 

한국, 손배청구로 파업권 본질 부정

키아이 특별보고관은 결사의 자유 항목에서 노동조합에 가장 많은 비중을 할당했다. 키아이 특별보고관은 복수노조를 활용한 발레오만도지회 노조파괴 사례를 소상하게 소개하며 “기업들이 사용자 책임을 회피하며 친사용자 노조를 설립, 노동자에 대한 협박과 위협 등으로 독립적인 노조를 약화시켰던 사례들에 대해 알게 됐다”고 밝혔다.

키아이 특별보고관은 발레오만도와 유성기업의 노조파괴 사례에서 보듯 노사관계에서 정부는 중립을 넘어 노동조합의 자주성을 보장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조 가입 대상을 결정하는 판단은 정부가 할 일이 아니라고 꼬집었다.

▲ 민주노총 등 인권시민사회단체 대표단이 6월15일 스위스 제네바 유엔 인권이사회 앞에서 벌인 백남기 농민과 한국 노동자 탄압을 알리는 거리 캠페인에 시민들이 참가하고 있다. 참여연대 제공

해고자의 노조가입을 이유로 전교조를 법외노조화하고 공무원노조 설립신고를 거부하는 행정은 이들의 결사의 자유 권리를 부당하게 침해하는 행위인 만큼 ILO결사의자유위원회 권고를 즉각 이행하라고 촉구했다.

보고서는 한국에서 파업 합법성 여부에 대한 판단권이 사실상 관련 당국에 있는 상황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노조 파업으로 인한 손해에 대해 민·형사 책임을 묻는 소송은 파업권의 핵심 본질에 반한다고 지적했다.

 

한국, 민주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일 일어나

키아이 특별보고관은 세월호 참사를 별도의 항목으로 보고했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독립된 진상규명 요구가 무시됐다는 불만이 있었고, 이 불만이 평화 집회의 핵심이라는 지적이다.

키아이는 세월호 참사는 명백히 정치화했다며 정부 책임성과 투명성에 대한 요구를 정부 자체를 약화시키려는 시도로 간주하는 정부의 판단은 민주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표현했다.

유엔 인권이사회는 키아이 특별보고관 발표에 이어 한국 정부 입장을 듣고 시민단체 반박까지 경청했다.

▲ 키아이 특별보고관이 지난 1월29일 기자회견에서 “시위는 한국이 위대한 국가로 변모하는데 기여했고 한국 정부와 국민들이 이러한 위대한 유산을 소중히 지켜야 한다고 촉구하고 싶다”면서 “모든 한국 국민들은 평화 목적 집회에 참석해달라”고 당부하고 있다. 김형석

정부는 “우리는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며 “백남기 씨의 경우는 검찰에서 철저하게 수사했다”고 주장하고 집회·결사의 자유를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이에 대해 발언에 나선 백남기 농민의 딸 백민주화 씨는 “한국 정부는 시위를 집회가 아닌 범죄로 규정해 임의적으로 금지하고 있다”며 “이 땅에서 정의는 찾아볼 수 없다”고 분노했다. 백 씨는 “한국 정부는 이 사건을 철저히 수사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7개월 동안 그들이 한 건 고작 저희 언니를 불러 고발인 조사를 한 차례 한 게 전부”라고 고발했다. 이어 “아버지에게 발언할 기회를 달라”고 요청한 백 씨는 참가국 허락을 얻어 한국 경찰이 쓰러진 백남기 씨 위로 물대포를 조준발사하는 사진팻말을 5초 동안 들었다.

백민주화 씨가 발언하는 동안 올해부터 유엔 인권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는 최경림 주 제네바 한국대표부 대사는 부의장에게 진행을 맡기고 자리를 비웠다.

앞서 민주노총과 참여연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백남기 농민의 딸인 백민주화 씨 등은 인권시민사회단체 대표단을 구성해 6월13일 유엔 인권이사회가 있는 스위스 제네바로 출국했다. 이들은 15일 인권이사회 건물 앞에서 백남기 농민 건강회복 염원, 집회 시 물대포 사용금지, 구속 민주노총 노동자 석방을 촉구하는 집회를 여는 등 한국 집회·결사의 자유 실태를 국제사회에 알리는 다양한 행동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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