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밥 먹고 살았다.” 자동차연료밸브를 생산하는 경기안성의 코리아에프티 노동자들은 엉망인 식당 밥을 먹으며 일 해왔다. 식당 밥만 개밥수준이 아니라 처우도 엉망이었다. 통상임금에 관한 법원판결이 나자 회사는 2015년 임금체계를 일방적으로 바꾸면서 상여금 400%를 주지 않았다. 회사는 상여금을 기본급에 다 반영하고 임금이 올렸다고 했지만 현장의 노동자들은 오히려 임금이 줄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대로 살면 희망이 없다’고 느낀 김한우 지회장과 동료 몇이서 “노조를 만들자”고 결심했다. 2015년 2월, 민주노총 평택안성지부에 연락해 금속노조 경기지부와 만났다. 경기지부는 ‘노조만들기 매뉴얼’에 따라 매주 초동멤버 교육을 진행했다. 현장상태 파악, 경영상태 분석, 납품관계를 비롯한 사측의 장단점 파악, 현장 동료들의 장단점 파악과 토론을 이어갔다. 임금명세서를 모아 노동자운동연구소와 임금을 분석했다.

지난 7월26일, 20여명이 모여 코리아에프티지회 설립준비위원회 총회를 열었다. 누가 간부를 맡을 것인지 정하고 임금과 단체교섭 요구안에 대한 의견을 모았다. 규칙 제정을 비롯해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설립총회 날짜를 8월16일로 결정했다.

▲ 2015년 8월16일 코리아에프티 노동자들은 희망을 만들기 위해 지회를 건설했다. 코리아에프티지회 창립 총회를 마친 조합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지부 제공

8월16일, 가슴이 두근거렸다. 코리아에프티 노동자들이 조합원으로서 자신을 드러내기 어려워하는 상황에서 얼마나 모일까 걱정했다. 조합원들은 모였다. 코리아에프티에 처음으로 노조 깃발이 올랐다. 안성의 생산직 200여 명 중 140여 명이 가입했다.

코리아에프티지회가 뜨자 회사는 곧바로 관리자를 동원해 주말특근으로 재고를 쌓기 시작했다. 회사는 동시에 노무관리 전문가를 채용했다. 경기지부는 새로 영입한 노무전문가의 신상을 서둘러 파악하고 대응자세를 갖췄다.

9월2일, 창구단일화 절차를 거쳐 유일한 노조이자 교섭대표노조로서 상견례를 요청했으나 사측은 일주일 연기를 주장했다. 신생노조의 승패는 현장 이데올로기를 누가 주도하는가에 달려 있다. 지부와 지회는 설립 1주 전부터 매주 소식지를 만들어 현장분위기를 주도해 왔기에 사측의 장난질을 미리 파악하고 공략하기 시작했다. 결국 회사는 사장을 포함해 9월9일부터 교섭에 참석하기 시작했다.

10월6일 변수가 발생했다. 회사는 비정규직과 관리직을 포함해서 100여 명이 일하는 경주공장에 기업노조를 설립했다. 안성 공장에서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회사는 창구단일화 절차를 다시 하거나 개별교섭을 하자고 했다. 사측은 창구단일화절차에 대한 하급심과 노동부의 행정해석이 엇갈리는 상황을 이용하려 했다. “잘 몰라서 교섭요구사실 공고를 경주공장에 하지 않았다”면서 하급심의 판례를 근거로 들이댔다.

10월16일과 23일 전 조합원 교육을 진행했다. 경주의 기업노조 설립에 대한 우려와 “파업을 꼭해야 하느냐”는 염려가 컸다. 투쟁수위를 올려야 하는 시점이기에 잔업을 거부하고 교육을 진행했다. 교육 후 조합원들은 걱정을 걷어내고 오히려 “언제 파업에 들어가느냐”면서 파업에 대한 의지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 2015년 11월30일 코리아에프티지회 조합원들은 임금, 단체협약 의견접근안에 대해 찬반투표를 벌여 94% 찬성으로 통과시켰다. 지부 제공

11월6일, 지부와 지회는 조정신청에 돌입했다. 경기지방노동위원회는 창구단일화 과정에서 ‘공고 하자’가 있고 이대로 단체교섭을 타결해도 효력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창구단일화 절차를 다시 할 것을 제안했다. 그러나 창구단일화절차 관련한 하급심과 노동부의 행정해석들이 엇갈리는 상황이기에 경기지부는 지노위에게 공문으로 근거를 공식 답변하라고 요구했다.

노동위원회는 결국 절충안을 선택했다. 지금까지 진행해온 교섭을 인정하되 형식적으로 창구단일화 절차를 재개하여 종료되는 날에 본 조정을 마치겠다고 했다. 조합원들은 조정이 종료되기 전인 11월23일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벌여 95.2%의 압도적 찬성으로 파업준비를 마쳤다.

회사는 궁지에 몰리기 시작했다. 완성차에서 수시로 코리아에프티의 상황을 점검하면서 회사는 더욱 난처한 상황으로 빠져 들기 시작했다. 지회 조합원들은 “파업을 빨리 하자”면서 당당하게 투쟁의지를 드러내며 사측을 압박했다. 경기지부는 지부조합원 총회를 코리아에프티에서 열겠다면서 회사를 압박했다.

11월25일 회사는 결국 손을 들었다. 2015년 추가로 기본급 84,750원을 인상하되 일시금으로 101만원을 지급하고 상여금 보증일시금 100만원, 추가 일시금 100만원 등을 지급하기로 합의했다. 노조사무실은 물론 전임자 활동, 총회, 교육, 간부회의 유급활동시간 등을 인정하는 단체협약에 의견접근 했다.

11월30일 지회는 전조합원 교섭보고 총회를 주야간조 각각 열고 임금-단체협약 의견접근안 찬반투표를 진행했다. 조합원 94%의 압도적 찬성으로 가결시켰다. 12월2일 정규전 경기지부장이 참가한 가운데 지회 단체교섭 조인식을 마쳤다. 코리아에프티 역사상 첫 단체협약이다. 조합원들은 생애 첫 단체협약을 마침내 쟁취했다.

김지현 지회 대의원은 노조설립준비를 하면서 “코리아에프티에 와서 정직원 시켜준다고 해서 파이팅을 외쳤다. 그런데 알고 보니 똥팅이었다”고 했다. 마침내 똥팅이 아니라 파이팅을 외칠 수 있는 새로운 노동자의 문이 열렸다. 지회총회에서 조합원들은 “노동조합 잘 키워 맛나게 살아보자”를 당당하게 외쳤다.

조건준 / 노조 경기지부 교육선전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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